송산고 박희상 감독···“생각하고 이해하는 배구 가르치겠다”
송산고 박희상 감독···“생각하고 이해하는 배구 가르치겠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1.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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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선수들, 개인 훈련 의식 부족··· 프로배구 '용병 몰빵’은 국내 선수들의 책임” 쓴소리

“배구도사” 

현역 시절 그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그의 현역시절은 한국배구의 황금기와 궤를 함께한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월드리그 6강의 시절(1995년)에도 그가 있었고, 우리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도 그가 있었다. 신진식 현 삼성화재 감독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윙스파이커로 꼽히는 박희상(45)씨. 그가 화성 송산 고등학교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송산고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온 박희상 前 우리캐피탈 감독

 

1. 변화··· “박희상의 진짜 배구를 해보고 싶었다”

그는 늘 냉혹한 승부의 일선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 현역시절 8년간 국가대표였고 은퇴 후 우리캐피탈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대캐피탈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그런 그가 고교 배구 감독으로 돌아온 이유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프로에 잔뼈가 굵은 분이 고교팀을 맡은 배경이 궁금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나의 배구를 해보고 싶어서다. 우리캐피탈 시절에는 상황이 많이 척박했다. 모 기업 자체도 없는 와중에 상황에 맞춰 임시변통으로 헤쳐나갔을 뿐이다. 이제는 모든 걸 떠나서 박희상의 배구철학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배구의 트렌드는 ‘서브’와 ‘리시브’로 압축된다. 특히 리시브는 가장 큰 화두이다. 리시브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중요한가.

리시브는 손과 발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판단력이 중요하다. 공이 어디에 떨어질 것인지, 오버로 잡아야할지 언더로 잡아야할지 혹은 잡지말아야 할지 등의 빠른 판단이 바로 내려져야 한다. 이런 판단력은 오랜 훈련 속에서 묻어나온다.

∇현재 배구를 보면 2인리시브(수비능력이 좋은 리베로와 윙 스파이커 두 사람이 리시브 전담)시스템과 3인리시브(리베로, 두 사람의 윙스파이커가 모두 리시브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있다. 어떤 시스템이 우리에게 잘 맞는다고 보는가.

이제는 3인도 부족하다. 공격 비중이 높은 라이트까지 수비에 참여하는 4인리시브 시스템으로 가야한다. 소수의 선수가 감당하기 힘든 스피드의 서브가 들어오기 때문에 모든 선수가 리시브에 참여해서 일단 띄워놓고 다음을 생각하는 토털배구를 구사해야한다. 그것이 한국형 리시브 시스템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2. 생각하는 배구···“공격하나만으로 놓고 치는 배구 원하지 않는다”

현역시절 그가 펼쳤던 배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재다능(多才多能)이었다. 그런 그가 추구하는 배구는 어떤 색깔일지 궁금했다. 그의 배구 철학을 관통하는 두 단어는 ‘생각’ 혹은 ‘판단’이었다.

 

∇이제는 선수를 발굴해야 하는 입장이다. 배구 선수의 자질은 어떤 것이 있나.

일단 배구는 신장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점프력과 감각도 좋아야 한다. 추가로 내 경험이지만 소심하고 소극적인 아이들은 대형선수가 되지 않는다. 대범하고 적극적인 자세 또한 훌륭한 선수의 자질이다.

∇배구는 이해도가 굉장히 중요한 종목이 아닌가.

배구는 하나에서 끝나는 종목이 아니다. 공격이든 수비든 블로킹이든 하나-둘-셋 연결이 이어진다. 따라서 하나가 아닌 둘 셋까지 바라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배구 센스다.

∇어떻게 해야 생각하고 판단하는 배구를 할 수 있을까.

이 안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처절하게 고민해야한다. 지금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 그다음에 뭘 준비해야할지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잘하고 싶다는 절실함 혹은 책임감이 다음 그리고 그다음을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다.

 

 

3. 부임 3개월차 ···“아직 선수들 역량 잘 몰라... 첫 대회 목표는 4강”

그가 송산고에 부임한지 3개월째다. 팀의 역량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첫 대회 목표를 묻자 예선탈락할까봐 밤잠을 못잔다고 너스레를 떠는 박 감독.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승리를 넘어 송산고 배구부에 이식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송산고 감독으로 취임한지(지난 10월 취임) 3개월째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내가 가서 어떤 배구를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기본기는 정말 중요하지만 기본에만 집착하는 것은 원치않는다. 그렇게 되면 즐길 수가 없다. 발전성있는 배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무엇보다 공격하나만 가지고 놓고 치는 배구는 원하지 않는다.

∇현재 송산고의 전력은 어느 정도로 보고 있는가.

첫 춘계대회에서 예선탈락할까봐 밤잠을 못자고 있다(웃음).막상 2개월 정도 부딪혀봤는데 우리 선수들의 기본기가 너무 부족하다.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구를 이해하면 아직 어린 선수들이라 금방 실력이 느는데 아직은 그런 부분들이 부족하다.

∇최근 용병 때문에 아포짓 스파이커로는 안가려고 하지 않나.

자기들의 능력에 맞춰서 훈련 시켜야지 그런 것을 생각할 시기는 아니다. 일례로 윙스파이커 포지션의 선수가 있는데 키가 너무 작으면 리베로로 바꿔줘야한다. 선수와의 스킨십을 통해서 선수의 소질을 개발하는 것은 감독의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나 혼자만의 판단으로 “너 이거해” 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송산고 주축 선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학년 올라가는 홍동선은 키가 196인 윙스파이커다. 아직도 신장이 크는 중이고 공을 때리는 테크닉도 좋아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리시브라던가 남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가르쳐볼 생각이다. 그 밖에 좌우쌍포로 오흥대라는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가 있다. 공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날렵한 몸을 가진 선수로 만들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허수봉, 임동혁 등 고졸 선수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프로로 직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는 단 2년이라도 대학을 거쳐 프로에 가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지석처럼 바로 주전으로 뛸 수 있다면 모를까 경기를 아예 뛸 수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장래성이라는 무기 하나로는 프로에서 희망이 없다.

∇김영란법 때문에 이제는 운동선수들도 수업을 다 들어야 한다.

보통 수업이 4시 30분 정도에 끝나면 5시부터 운동을 한다. 그래서 7시 30분까지 훈련을 하고 빨리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9시부터 필요한 운동을 하면 절대적으로 훈련 양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수업은 받아야한다. 수업을 빼먹고 훈련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긴 수업시간으로 인한 훈련부족이 아쉽지는 않은가.

짧은 훈련 시간이 아니라 선수들의 마인드가 아쉽다. 일반인들은 자기 스펙업그레이드를 정말 열심히 한다. 정규 수업을 다 하고도 새벽에 학원에 가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하지않나. 운동선수들은 그런 것이 없다. 나는 리시브를 잘하기 위해 개인운동을 정말 많이 했었다. 이제는 팀 훈련이 줄어든 만큼 개인훈련이 정말 중요한 시대다.

 

4. “후배선수들, 프로의식 부족··· ‘용병 몰빵’은 국내선수들 경쟁력 강화해야 없어져”

그는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송산고에 한정된 질문만을 하기가 아까워 프로배구에 대한 질문도 몇 가지 던졌다. 자상하고 젠틀해보이던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것은 후배 선수들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었다.

 

∇최근 배구를 보면 박희상같은 다재다능한 윙스파이커가 멸종된 느낌이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초중고부터 프로까지 너무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는 것 같다. 옛날 지도자들이 행했던 지도법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기본기가 많이 무너졌고 무엇보다 노력이 부족하다. 특히 요즘 프로선수들은 돈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돈을 받기 위해서 합당한 나의 스펙을 쌓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가 우선인데 그런 면이 부족하다.

∇‘몰빵배구’에 대한 팬들의 반감이 심하다. 하지만 승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도 일견 수긍이 간다.

일단 프로는 이겨야 한다. 팀의 상황에 맞게 전술을 가져가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국내 선수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트라이아웃을 하게 되면 외국인 선수 연봉이 3억이다. 그런데 연봉이 4억이 넘는 국내 선수 중에 벤치에 있는 선수도 있다. 국내 선수들이 반성해야한다. 용병선수들이 40점,50점을 해줄 동안 우리 선수들이 20점도 못하니까 이런 배구가 나오는 것이다. 국내 선수들이 본인들 받는 연봉의 값을 해내야 외인 의존도가 줄어들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소위말하는 '몰빵배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5. “박희상의 배구는 기본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배구”

 

박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어렴풋이 그가 추가하는 배구에 대한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에게 “박희상의 배구는 무엇이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기본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배구”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배구에 대한 이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컨베이어벨트처럼 단순하게 움직이기만 하는 배구는 발전성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잘못에 대해 핑계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실수 했다면 내 잘못이다 라고 인정을 해야하는데 남의 핑계를 대면 발전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늘 선수들에게 “훈련 때 나한테 혼나는 것이 두려워서 주눅들어서는 안된다. 훈련은 실수 하라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된다. 마음껏 하되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플레이하라고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올 한해 송산고 배구부의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내심 우승하겠다는 강력한 출사표를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온 대답은 우문의 현답이었다. 그는 “나의 배구를 우리 선수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냥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배구를 이해하고 행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말이다.

EPL의 명감독 아르센 벵거는 “나의 꿈은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 5분만이라도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 감독의 배구관은 벵거 감독의 철학과 일견 닮아있다.

그는 과정적으로 올바른 배구, 그러면서도 이해하고 생각하는 배구를 구현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러한 배구는 늘 승리와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론 서로 상충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나는 단지 이기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박희상의 배구를 펼치기 위해, 박희상의 배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돌아왔다”라고 그는 다시금 강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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