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 수 제한’ 고교야구, 선수 빈부격차 본격화되다
‘투구 수 제한’ 고교야구, 선수 빈부격차 본격화되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1.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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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투수들의 전체적인 리그의 질적 하락 초래 우려

“정말 방법이 없네요~ 어떻게 시즌을 운영해야할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정재권 신일고 감독의 목소리에 고민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유독 생각이 많아졌다.

신일고등학교(이하 신일고)는 봉중근, 김현수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해낸 전통의 야구 명문학교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기세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한국의 입시 환경 때문이다. 신일고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다. 자사고는 구성할 수 있는 선수단 총인원이 한정되어있다.

정 감독은 “우리 팀의 경우 꾸릴 수 있는 총 선수단이 30명 정도다. 투수의 경우 3학년이 되는 선수가 3명이고 2학년이 4명이다. 올해부터 투구 수 제한 규칙이 시행되는데 7명가지고는 주말리그는 몰라도 전국대회를 치루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 상황으로는 8강 이상을 목표로 잡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고교야구계의 부익부·빈익빈, 어떻게 해결할까

 

본 이미지는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이하 대한야구협회)가 시행하기로 한 투구 수 제한 및 강제 의무휴식 규정으로 인해 투수들의 혹사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구 수 제한을 ‘유망주 보호’라는 측면에서만 조망하기에는 그 규칙이 리그에 너무 많은 변화를 양산한다.

가장 주목해야할 것이 ‘전력불평등’이다.

선수가 부족한 고교야구에서는 투수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에이스 1명이 10명, 20명의 몫을 하는 것이 고교야구다. 그런데 이제 에이스급 투수들이 길게 던질 수가 없다. 질보다는 양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든 학교가 동등한 양의 선수들 보유하고 시합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현 입시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보유할 수 있는 선수의 수가 천차만별이다. 필연적인 불평등 게임이 양산되는 것이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신일고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방학교들은 더 심하다. 지방은 야구 명문고들조차 선수단 규모가 작아져 많은 경기 소화가 어려운 상태다.

반면 서울의 A 고교야구팀은 프로야구단 못지않은 거대한 선수단 규모를 자랑한다. 투수만 한 학년에 20명 가까이 된다. 이처럼 고교야구 선수단이 프로구단 만큼 커진 것은 일반 고교는 인원수 제한이 없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남은 선수들을 ‘임의배정’으로 모두 받아주기 때문이다. 선수층에서 3배 이상 차이가 나게 되면 승부의 추는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부족한 선수층’을 ‘질’로서 극복해왔던 일부 팀들은 이제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과거 김광현의 안산공고 사례와 같은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스포츠가 주는 재미의 원천은 누가 이길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있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이 배제되는 순간 그 스포츠는 관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신일고 정재권 감독 또한 그런 점을 우려했다. “어떤 학교는 한 학년에 투수가 13명 이상이다. 우리는 전 학년 합쳐서 고작 7명이다. 입시에서의 포지션·총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투수를 더 뽑기도 힘들다. 현 규정에서는 투수숫자=전력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선수층이 두꺼운 학교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규칙이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면 고교야구가 지니고 있던 매력이 상당 부분 감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야구협회는 몇해 전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 팀당 등록선수를 50명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두었었으나 지금은 학교 및 학부모 측의 반발로 없어진 상태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라는 문구로 불평등을 묘사한바 있다. 사회구조적 불평등은 자본주의가 해결해야할, 하지만 하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다. 이번 규칙개정으로 야구계도 우리 사회와 똑같은 고민을 떠안게 될 수도 있다.

 

“투수 및 리그 전체의 질적 하락 초래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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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투수가 없다” 매년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 나가면 듣는 이야기다.

최근 한국 프로 야구는 에이스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한 팀에서 외인 2명이 1,2선발을 맡는 것이 당연시되고 3할타자가 30명 이상(2017년 기준 33명)이 양산이 되고 있는 ‘타신투병’(야구팬들이 투수들의 떨어지는 기량을 조롱하며 만들어낸 유행어) 시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투구 수 제한규칙은 가뜩이나 떨어져있는 투수들의 기량 하락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 감독은 “류현진 이후로 훌륭한 고졸 투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많은 투구를 하지 못하게 되면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 되리라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투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교 리그 전체의 질적 하락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야수들이 투수로 투입되어야할 수도 있고, 포기하는 게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투수교체도 많아지니 경기시간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행여 알루미늄 배트로 회귀라도 하게 되면 이런 현상은 절정에 다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승환 투수를 지도해본 적도 있다고 말하는 김종신 인천대 평생교육원 감독도 이와 의견을 같이 했다. “투수는 던지면서 성장한다. 공 던지는 방법뿐만 아니라 견제,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 등은 경기에서만 체득된다. 특히 중요한 경기에서의 한 게임은 평소 다섯 게임 이상의 성장 촉진제가 되는데, 그런 경기에서 30개만 던지고 내려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위기를 넘겨보지 않은 투수가 좋은 투수로 성장하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이는 프로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야기다. 의외로 투수는 많이 던지면서 성장한다는 지론, 그리고 한계 투구 수만으로 투수들의 혹사를 진단하는 풍토는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지도자들이 꽤나 많다. 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선동열 현 국가대표 감독이나 김성근 전 한화이글스 감독이다. 결국, 투수들의 부상은 투수들의 기본기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투수란 많이 던지면서 성장하고 대형투수가 만들어진다는 이론과 궤를 함께 한다.

정재권 감독은 “유망주 선수들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는 존중한다. 하지만 현 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투구 개수를 조금 더 유연하게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종신 감독은 “고교선수들에게는 투구 이닝이 중요하다. 대입에서 대학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선수의 이닝이다. 한해에 최소 60이닝은 던져줘야 하는데 현 시스템에서는 쉽지 않다. 선수들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완도 필요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야구협회 “올해 첫 시행··· 현장의 목소리 경청하고 소통하겠다”

 

투구 수 제한 규칙은 이렇듯 올해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협회 측은 충분한 검토를 마친 만큼 올 시즌은 제도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김용균 사무처장은 “이 규칙은 TF팀 내부에서 KBO와도 협의를 거쳤고 많은 고교야구 지도자 간담회를 통해서 오랜 기간 논의해왔던 법안이다. 급작스럽게 시도하는 규칙이 아닌 만큼 처음부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원래는 투구 수 말고 이닝제한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이 많아서 변경된 것이다. 이 규칙으로 인해 투수들이 더 공격적으로 투구를 하지 않겠나. 장기적으로는 경기 시간 절약 및 공격적인 야구로의 전환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의 아쉬움에 대해서도 대한야구협회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다. 투구 수를 조금 더 유연하게 늘려달라는 요청도 알고 선수 격차에 대한 문제도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시즌이 시작되어도 계속 현장과 소통하고 만약 미비점이 있다면 충분히 논의해서 보완하겠다. 올 시즌 처음 시행되는 규칙인 만큼 부족하더라도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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