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고교야구 투구 수 제한,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자의 눈] 고교야구 투구 수 제한, 아직 갈 길이 멀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1.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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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와 서울고의 2007년 제 41회 대통령배 결승은 고교야구의 진수를 보여준 명경기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경기가 화제가 되었었던 것은 경기가 극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날까지 20이닝 동안 330여 개의 공을 던진 아픈 어깨를 이끌고 결승 당일 또 다시 선발 등판해 팀을 승리 직전까지 이끌었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 한 개를 버티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하자 마운드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을 던진 당시 서울고 투수 이형종(28, LG트윈스) 때문이었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울면서 공을 던지는 것도,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오열 하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이 경기는 혹사, 간절함, 드라마, 감독의 용병술 등 여러 이야깃거리를 낳으며 지금도 야구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장면은 볼 수 없을 듯하다. 올해부터 고교야구에서 ‘투구 수 제한 ’규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투구 수만 제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 WBC와 같이 투구 수에 따른 강제휴식일도 함께 지정 된다. ‘투구 수 제한 및 강제 휴식일 지정 규칙’은 고교야구 창설 이래 가장 큰 변화라고 칭할만하다. 사실 고교야구의 혹사는 이미 언급하는 것조차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케케묵은 화제다. 적폐(積弊)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 고질화된 폐단이다. 고교야구계에서 혹사는 숱한 비판 속에서도 절대 근절되지 않는 구조적 적폐 다름 아니었다.

사실 ‘혹사 근절’이라는 구호가 한낱 잔소리로 전락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고교야구의 혹사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병폐라는 점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을 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도 상당부분 갖고 있다. 일단 전국대회의 성적에는 프로 입단과 대학 입학이 걸려있다. 혹사를 당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의 대학입학도 같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있다. 프로나 대학 관계자들에게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전국대회다. 우승이라도 하면 영원히 이름이 남는다. 학교의 명예도 걸려있다. 여기에 언급하기를 꺼리지만 금전적인 문제도 여러 가지가 걸려있다. 선수들 또한 일생에 한번씩 밖에 오지 않는 기회다보니 진통주사를 맞아가며 죽을힘을 다해서 던진다. 이렇듯 학생들과 지도자들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다보니 혹사는 안 된다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이런 병폐를 제거하고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강력한 메스를 가했다. 이제 투수들은 절대 한경기에 105개를 넘어서는 투구를 하지 못한다. 30개 이하의 투구에서만 연투가 가능한데 경기수가 적은 고교야구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또한 제구력이 프로보다 많이 떨어지는 고교야구에서 105개의 투구로 완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사실상 완투도 금지되고 연투도 금지된다. 76개 이상을 던지면 무조건 4일 이상은 쉬어야 한다. 이제 고교야구에서 혹사라는 단어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규칙의 취지는 충분히 환영할만하다. 제도 자체에 손을 대지 않고서는 변화를 유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학원 스포츠는 엘리트에서 클럽 스포츠로 변화해야 한다. 과거와 같이 맞아가며 운동하는 원시적인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1등이 되지 못하면 잉여인력으로 전락해버리는 승자독식주의 또한 청산해야 할 유산이다. 설령 1등이 되지 못하더라도 제2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 운동을 병행하는 클럽형 학원 스포츠 시스템은 고교야구가 가야 할 시대적 당위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대적 당위라고 해서 나머지 가치를 깡그리 무시해서는 안 된다.이 규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 

첫 번째는 필연적인 불평등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동등한 조건’ 아래서이다. 이는 종목 여하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최대한 동등한 조건이 형성되도록 힘쓸 의무가 리그를 관장하는 협회에는 있다.

자사고와 일반고는 선수층이 3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투구 수 제한을 실행하면 투입할 수 있는 투수 숫자가 곧 팀 전력이기 때문에 너무 큰 불평등 경기가 된다. 결과를 알고 보는 것 만큼 시시한 경기도 없다. 그건 곧 고교야구의 경쟁력 약화 및 팬들의 외면으로 이어진다. 고교야구에서 혹사는 가장 큰 병폐이기는 했지만 한 팀의 에이스들이 어깨가 부서져라 투혼을 불살라가며 동대문에 뿌리던 수많은 땀과 눈물들이 고교야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수들의 대입 제도도 손봐야 한다. 인천대 김종신 감독은 “대학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이닝이다. 보통은 60이닝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데 소질 있는 선수들은 더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어 할 텐데 이닝이 많이 줄어들게 되면 선수들을 파악하는데 일대 혼란이 일 것이다. 대입 전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대입은 고교야구 선수들에게는 인생이 달린 문제다.

세 번째 고교야구의 질적 약화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에이스급 투수들이 많은 이닝을 던지지 못한다. 선수층의 차이도 상당히 크다. 지역별(지방과 서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팀은 버리는 경기와 잡는 경기가 명확해진다. 투수를 함부로 소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수를 많이 바꿔야 하므로 경기도 늘어지게 된다. 프로와 같이 ‘원 포인트 릴리프’들도 많이 등장할 것이다. 굳이 잡을 의지가 없는 경기들은 투수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몇 점을 상대에게 헌납하던 완전히 버리려들 것이다.

몇 해 전 프로야구에서 무승부가 패배와 진배없던 시절 연장 12회 말에 3루수였던 최정(30, SK)이 투수로 등장해서 끝내기 폭투를 허용했던 것과 비슷하게 야수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동계연습경기 금지'에 대한 규칙이 올해 겨울부터 본격 실행되면 경기력 저하에 대한 불만도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약점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현장과 좀 더 대화해야 한다. 특히 자사고 팀들의 투구 수를 좀 더 현실적으로 유연하게 바꿔 달라는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거에 시행했다가 지금 폐지된 한 팀에 등록 선수를 제한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조금 더 심도 있게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다.

프로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 제도의 근간에는 '프로야구에 아프지 않은 선수들을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명분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있다. 그렇다면 이는 프로에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연고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어떻게든 고교야구의 경기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연구해봐야 한다. KBO 육성팀에서 새로 창단된 아마야구팀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KBO, 현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상생의 길을 찾아야만 이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 단순히 혹사 하나만 뿌리 뽑는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술년(戊戌年)의 트렌드는 개혁이다. 

지도자들의 부정부패,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법부 부패 등을 근절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단순히 ‘바꾸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설령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강한 고교야구’를 위함이라는 절대 명제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낡은 것은 버리자는 이분법적인 의식은 자칫 더 큰 불만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때문이다.

취지는 훌륭하다. 반드시 가야 할 길인 것도 맞다.

하지만 ‘투구 수 제한 규칙’은 이제 갓 시작하는 미완의 법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낮은 단계의 합의에 우쭐하거나 환호할 때가 아니다. “혹사가 사라진다”라며 섣불리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그 갈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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