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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테니스 대들보 한나래, US오픈 아서 애시 스타디움을 겨냥하다
여자 테니스 대들보 한나래, US오픈 아서 애시 스타디움을 겨냥하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2.03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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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스코바 이겼을 때 가장 기뻐.... 올해 그랜드슬램 출전이 가장 큰 목표”

인터뷰를 할 때마다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생각하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의 간극이 너무 클 때 생기는 현상이다. 테니스 국가대표 한나래(25, 인천시청)가 그랬다. 구릿빛 피부에 승부사다운 강인한 눈빛을 상상했던 예상은 “안녕하세요”라는 첫 마디부터 날아가 버렸다.

그녀의 첫인상은 발랄하고 통통 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학생 같은 이미지였다.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테니스 국가대표 에이스 한나래

 

부상으로 인해서 절뚝거리는 다리와 운동복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한나래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터이다. 스스로 “태국 스타일의 이국적인 외모 아닌가요?”라고 장난을 치는 그녀의 모습은 승부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운동선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한나래는 한국테니스 랭킹 2위이면서 세계랭킹 255위의 선수다. 장수정과 함께 대한민국 여자 테니스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테니스장에 따라다니다 테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한나래. 그녀는 언니, 남동생이 모두 테니스 선수였던 ‘테니스 패밀리’의 둘째였다.

정현과 호주 오픈 4강전을 치르는 로저 페더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는 그녀. 누구를 응원할꺼냐는 짓궂은 질문에 “페더러 응원할까요?(웃음) 에이 그래도 현이를 응원해야죠”라며 해맑게 웃는 유쾌발랄한 테니스 국가대표 에이스 한나래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1월 26일(금) 진천선수촌 테니스코트에서 만나보았다.

 

<손이 작아 라켓을 잡기 힘들었던 소녀, 국가대표가 되다> 

 

그녀는 간석초 – 부평서여중 – 석정여고를 나왔고 현재는 인천시청 소속인 인천의 프렌차이즈 스타다. 또한,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손투핸드를 구사하는 선수다. “어릴 때는 손이 너무 작아서 라켓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예 습관이 되다보니까 굳어져버렸다”고 양손투핸드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 70회 한국테니스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우승(출처 : 대한테니스협회)

 

한나래는 주니어시절 기록이 거의 없다. 그것은 그녀가 바로 시니어 무대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고교 1학년·2학년 때 ‘장오배’ 에서 우승을 했다. 그걸 보시고 삼성증권 김일승 감독님께서 스카우트를 해주셔서 바로 시니어로 도전을 했다. 주니어를 거치지 않고 성인무대로 바로 도전을 한 셈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힘들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주니어를 거쳐서간 선수들도 힘겨워 하는데 하물며 주니어를 건너뛰다시피 하고 넘어갔으니 그 고생은 말도 못 했을 것이다.

“아유~ 말도 마세요. 초반에는 거의 1~2회전에서 지는 게 일상이었어요”라고 손사래를 치는 그녀이지만 일찍 시니어로 넘어간 것에 대해서는 크게 후회가 없단다. 그런 고생들이 하나하나 현재의 한나래를 이루는 밀알이 되었다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한다.

 

<한나래의 영광의 순간들, 그리고 아픈 순간>

 

한나래는 밝은 선수였다.

인터뷰 내내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수많은 아픔과 굴곡도 숨어있었다.

테니스를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그녀는 “작년 US오픈 예선에서 탈락한 직후”라고 말했다. “그랜드슬램 예선에서 4번 연속 1회전에서 지다보니까 더 이상 못 올라가는 건가 하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투어를 도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래도 주위에서 할 수 있을 때 포기하지 말고 해보라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2017 코리아오픈 1회전 플리스코바를 이길 당시 한나래의 경기장면(출처 : 코리아오픈 조직위)

 

그렇다면 반대로 그녀에게 테니스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작년 9월 코리아오픈에서 세계랭킹 42위의 플리스코바를 이겼을 때’였다. 그 경기는 한나래의 테니스 인생 중 가장 높은 세계 랭킹의 선수를 이긴 경기였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경기였다. 그 날 한나래가 물리친 플리스코바는 당시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카롤리나 플리스코바(4위·체코)의 쌍둥이 자매다. 그녀는 “아마 그 기억은 테니스를 하는 동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영광의 순간을 좀 더 듣고 싶어 당시 상황에 대해 추가설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대진표가 나왔을 때 2번 시드 선수여서 또 운이 안 따라줬구나 싶어 한숨만 나왔었지만, 어차피 잃을게 없으니까 맘 편히만 하고 나오자 생각하고 했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또한 “경기 중간에 비가 왔었다. 그때 감독님이 이런저런 작전을 말씀해주셨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면서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게 훌륭한 선수를 이기고 2회전에 떨어진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녀는 2회전에서 사라 소리베스 토르모(93위·스페인)에게 패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42위를 이겼으니 93위 선수와도 충분히 해볼 만하겠다 싶었는데 게임이 영 안 풀리더라”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 이제는 성숙해야할 때"> 

 

그랜드슬램에 가기 위해서 어떤 점을 보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서브에 중점을 많이 두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현재 세계 테니스는 서브로 시작해서 서브로 끝난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서브가 중요하다. 한나래는 또한 이를 인지하고 서브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었다. “작년에 서브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 올해는 스포츠과학센터에서 근육 부분에 패치를 붙여서 어떤 근육을 써야 서브를 잘 넣을 수 있는지까지 세세하게 분석 하며 서브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진천선수촌 실내테이스장에서 맹훈련중인 한나래

 

하지만 정작 그녀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인 부분의 보완이 더 중요하다고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테니스 선수들은 투어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거기에 비용까지 많이 들기 때문에 후원사가 없는 선수들은 투어에 나간다는 것이 언감생심이다. 한나래 또한 그 부분을 인정했다. 그녀는 “같이 다니다가 어쩌다 혼자가면 그 외로움이 어마어마해서 시합까지 영향이 갈 때가 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올해는 그런 부분마저도 즐기며 극복하겠다”라고 말했다.

문득 그녀는 훈련시간 외에는 뭘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지 궁금했다. 그녀라면 뭔가 특별한 취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예능프로그램 보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취미들을 가지고 있었다. 쇼핑에도 취미가 있었다. “해외에 다녀오면 나를 위해서 무조건 쇼핑을 한다. 뭔가 나를 위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늘 고민 한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한나래, 2018년 US오픈 아서 애시 스타디움을 겨냥하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아픈 기억, 그리고 한계에 대해서조차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매우 굳은 심지의 보유자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그런 그녀가 유달리 간절함을 보인 단어가 하나 있었다. ‘그랜드슬램’이었다.

그녀는 “호주 오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번의 그랜드슬램 예선에서 전부 아쉽게 졌다. 내가 랭킹이 낮아 시드를 받지 못하고 시작하다보니까 늘 1회전에서 시드가 있는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올해는 랭킹을 끌어올려서 시드를 받고 시작하면 위로 올라가는데 더 좋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그녀는 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 1년에 27개의 투어를 다니고 있다).

 

훈련 직후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나래

 

그녀는 공격적인 샷과 한 박자 빨리 치는 테니스가 주무기인 선수다. 특히 다운더라인(down the line - 같은 방향의 코스로 날리는 샷)을 좋아하고 포핸드 및 패싱샷(네트로 다가오는 상대 옆에서 빠져나가게 치는 샷)이 주특기라고 한다. 올해 한국 나이로 27살이 된 그녀는 테니스 선수로서는 적은 나이는 아니다. 테니스라는 종목이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녀는 또한 “몸이 일 년마다 다르다는 것이 느껴지기는 한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걸 핑계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보였다. “여태까지 투어를 다니면서 겪은 것과 배운 것이 있다. 이제 그것을 총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결연한 의지가 묻어나왔다.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대회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주저 없이 US오픈을 꼽았다. “내가 주로 시합을 하는 곳이 하드코트이기도 하고 또 유일하게 예선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 US오픈이라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그녀는 말했다(한나래는 2016년 US오픈 예선에서 중국의 주린을 2-0으로 물리치고 그랜드슬램 첫 승을 기록했으나 2회전에서 일본의 오자키 리사에게 0-2로 패했다).

테니스 국가대표팀은 다음 주 페드컵 출전을 앞두고 있다(인터뷰는 1월 26일 오후에 이루어졌다). 장수정이 빠져있기 때문에 한나래에게 가중되는 무게감은 상당할 것이다.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나 말고도 나리 언니나 수남이나 소라도 있기 때문에 믿고 하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소속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인천시청이 27개의 투어를 전부 지원해준다. 내가 인천 토박이다 보니까 더 많은 신경을 써 주시는 듯하다”라고 말하며 그 고마움을 올해 그랜드슬램 출전으로 갚겠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결연한 의지에서 저 멀리 US오픈의 아서 애시 스타디움(Arthur Ashe Stadium)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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