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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상고 캡틴 문가온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먹는 농구 하겠다”
삼일상고 캡틴 문가온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먹는 농구 하겠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2.08 0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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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컬러… 팀이 힘들 때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선수 되고파”

정승원 코치는 팀의 중심으로 이주영(182cm, G, 2학년)과 문가온(189cm, 3학년, F)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문가온은 팀의 주장이다. 처음에는 3학년이니까 당연히 주장을 시켰거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기자의 착각이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왜 이 선수가 팀의 주장인지 새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일상고 3학년 포워드 문가온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팀을 위할 줄 아는 마인드를 가졌다. 눈앞의 실리에 집착하지 않고 멀리 보며 자신의 가치를 찾아낼 줄 아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태양처럼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은은한 달빛처럼 사람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선수. 그가 바로 삼일상고의 포워드 문가온이다.

올 시즌 삼일상고는 장신 선수가 없다. 그는 전체 주전선수 중 신장이 2번째로 좋기 때문에 골밑과 외곽에서 전천후로 활약해줘야 한다. 그에게 본인의 포지션을 물었다. 그러자 2,3,4번이라고 말한다. 모든 포지션에서 다 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팀의 주장을 맡아서 당황할 법도 한데 그는 침착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맡은 만큼 책임감이 다르다. 선수들끼리 마음을 맞춰서 열심히 하면 작년만큼의 성적은 힘들겠지만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문가온은 현재 무릎부상으로 재활을 하고 있다. 올 시즌 삼일상고의 농구는 런앤드건(Run and Gun)이다. 무조건 많이 뛰어야 한다. 부상이 걱정되어서 그에게 무릎 상태는 어떠냐고 묻자 “현재 상태는 나쁘지 않다. 춘계대회는 충분히 뛸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웃는다.

팀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그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현중이도 나가고 윤기형도 졸업하다 보니 분위기가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애들을 모아서 키가 작아진 만큼 빠르게 플레이 하다 보면 충분히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라고 말한다. 추가로 “혼낼 때는 많이 혼내고 나중에 따로 불러서 미안하다고 한다. 악역을 많이 하는 편이다”라고 그만의 주장 노하우를 살짝 공개한다.

 

포스트업 플레이가 강점인 문가온

 

그는 제임스 하든을 좋아한다고 한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강상재(25, 전자랜드)를 좋아한단다. 그가 좋아하는 선수를 살펴보니 대략 슛을 쏘는 빅맨이 되고 싶다는 말인 듯했다. 그의 주특기 또한 미들 슛이라고 하니 대충 문가온이라는 선수의 플레이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에게 작년 수많은 게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물었다. 그러자 춘계리그 결승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춘계리그 결승전은 삼일상고의 2017년 첫 우승이었고, 라이벌 군산고와의 경기였다. 삼일상고가 전반에 약 20점 차까지 뒤졌다가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한 경기다.

삼일상고는 경기 초반부터 군산고의 신들린 듯 한 슛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1쿼터에서 13―32, 19점 차로 크게 뒤졌고, 전반을 36―51, 15점 차로 뒤진 채 마쳤다. 하지만 삼일상고는 하프타임 이후 전열을 재정비, 4쿼터 종료 6분 전 동점을 만든 뒤 결국 7점 차 승리를 챙겼다. 이날 문가온은 비록 득점은 많이 하지 못했지만 군산고의 에이스 이정현을 수비하며 팀 승리에 큰 보탬이 되었다.

 

1대1 돌파 연습 중인 문가온

 

그에게 자신의 강점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궂은일을 잘하는 선수’였다. 사실 이정현과 매치업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던 대답이었다. 주로 상대 에이스를 수비하고 2번에서 4번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수행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궂은일을 하다 보면 빛이 안 나서 힘들 법도 한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까지 득점 욕심을 내면 팀에 도움이 안 된다.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라고 어른스럽게 대답한다. 그래도 올해는 3학년이니 득점에 좀 더 많은 욕심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재차 물으니 “코치님도 득점에 많이 가담하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올해는 많은 득점을 노려보겠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졸업 후 가고 싶은 대학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농구 명문 고려대나 연세대 혹은 중앙대라는 대답이 나올까 싶어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그는 “경기를 뛸 수 있는 학교에 가고 싶다. 나를 원하는 학교라면 어디든 좋다. 꼭 명문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라고 말한다. 살짝 놀랐다.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삼일상고의 자랑을 좀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좋다. 체육관을 언제든지 쓸 수 있고, 코치님들도 개인 운동을 적극 도와주신다. 밥도 맛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운동선수 출신의 부모님을 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웅제약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전나영 선수이고 아버지는 농구 트레이너였다고 한다. 부모님이 농구계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라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시는 편이라고 한다. “시합 때 패스를 못하거나 타이밍을 못 잡으면 그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등등 이야기를 해주신다.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라고 웃으며 말한다.

 

수비연습 중인 문가온

 

운동 선수들에게는 누구나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는 “1학년 때 너무 힘들었다. 코치님은 나를 잘되게 해주려고 운동을 강하게 시키셨는데 내가 그것을 못 버텨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특히 강혁 코치님의 수비훈련이 아주 힘들었다”라고 말한다(강혁 코치의 수비 연습은 선수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그의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었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본인이 주축이 되어서 팀이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질문을 바꿔 그에게 문가온은 어떤 농구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나를 봤을 때 묵묵히 궂은일을 잘해주고 슛이 좋고 무엇보다 팀이 힘들고 위험할 때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그런 선수”라고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떤 한 선수가 떠오른다. 삼일상고 출신의 국가대표 양희종이다. 늘 묵묵히 수비하고 궂은일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양희종이기 때문이다.

 

당찬 출사표를 밝히고 있는 문가온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올 시즌 다른 팀들이 삼일상고의 전력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 팀들에게 우리 팀을 무시하지 말라고. 삼일상고는 약하지 않다고 팀의 주장으로서 강력한 출사표를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와 더불어 이 멘트는 반드시 기사에 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약 1분 정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도 살아나간다는 말이 있다. 윤기형과 현중이가 우리 팀의 이빨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빨이 없어도 잇몸으로 씹어 먹는 삼일만의 농구를 보여 주겠다”라고 말이다.

그의 결연한 의지에서 절대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2017년 고교 농구 최강자로서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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