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초·중·고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그 현재와 미래
[특별기획] 초·중·고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그 현재와 미래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2.14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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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운동선수들 97.8%가 교과성적 하위 20%, 전체 취업률 절반도 안 돼

“정말 잘해야 35살까지잖아요.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상상하니 무서웠어요”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이하 광신정산고) 농구 유망주 이준호(192cm, 88kg, C) 선수의 말이다. 그는 2, 3학년을 모두 주전으로 뛰었고 작년 연맹 회장기 4강에서는 12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할 정도로 유망한 엘리트 농구 선수다. 농구 명문 경희대학교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경희대가 아닌 서울대였다.

그는 고교 입학 후 공부를 놓지 않았다. 운동과 병행하면서도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영어 2등급, 사회탐구영역 2과목에서 각각 1,2등급을 받아 당당히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수시로 합격했다(서울대 체교과 수능 최저학력은 2과목 4등급 이상이다).

 

1. 운동 기계로 치부되는 학생 선수들… 절반 이상 잉여인력으로 전락

 

본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이준호 선수 같은 사례는 한국에서는 극히 드물다. 운동선수들에게 공부는 요원한 영역이다. 실제 교과부가 2006년 공식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학교 학생선수의 75%, 고교는 97.8%가 교과 성적이 하위 20% 이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축구 등에서 주말 리그가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전국대회는 대부분 평일에 열리는 탓에 정규수업 결손도 많아 이수율은 69.9% 밖에 되지 않는다. 대략 10시간 중 3시간을 빼먹는다는 것이다. 

체육과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대회 출전 등으로 수업에 빠진 학생에게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는 조사 대상의 절반(51.2%)에 그쳤으며 보충수업을 해도 형식적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2010.01.08. 연합뉴스).

2016년 기준으로, 전국 1만 2563개 초중고교 가운데,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는 곳은 4476개교(38.7%)다. 초등학교에서 2662명, 중학교 2697명, 고등학교 1984명이 학교운동부 선수로 뛰었다. 그런데 2009년 통계를 보면, 초중고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 가운데, 프로로 진출하는 학생은 고작 3~4% 수준에 불과하다.

대학에 입학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2011년도 대한체육회 통계를 보면, 대학을 졸업한 야구선수의 프로 진출 비율은 13.6%에 불과했다. 80% 이상은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 선수 은퇴 후 진로 현황(대한체육회, 2013년)을 조사했더니, 스포츠 관련 업종에 17%, 사무직이나 판매직, 자영업에 30%가 진출했다. 43%는 무직이었다(2017.04.10. KBS 뉴스)

선수들의 전체 취업률을 살펴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 8월 졸업까지 축구, 농구 등 10개 주요 종목의 대학선수 평균 취업률은 45.2%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더 심각한 통계가 제시된 적도 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자유한국당 이재영 의원이 2012년 10월 19일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대학선수 졸업 후 진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2년 7월까지 대학을 졸업한 선수 총 4113명 중 24.7%인 1017명만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야구는 376명의 졸업자 중, 단 한 명도 취업자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취업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종목은 야구 외에도 골프, 바둑, 사이클 등 총 13개 종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도에 운동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26개 대학 체육특기생의 16.04%가 선수생활을 중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2015.05.08. 헤럴드경제)

 

2. 한국에 도입된 ‘최저학력제’ 및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2010년부터 최저학력제가 신설되었고, 점진적으로 초·중·고교 전체로 이 법안을 확대해왔다(2017년부터는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가 대상이다). 초·중·고 학생 선수는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뒤에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훈련 장소가 학교에서 멀어서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경우나 대회 참가로 수업에 빠지는 경우엔 학교가 보충학습을 제공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시행된 최저학력제(출처 : 안민석 의원실)

 

최저학력제의 기준은 초등학교는 과목 학년 평균의 50%, 중학교는 40%, 고등학교는 30%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에, 고등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과목에 적용된다. 최저학력을 넘지 못하면,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 전국대회 출전이 제한된다.

2016년 9월 24일을 기해서는 청탁금지법(소위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었다. 운동선수들의 출석이 더욱 엄격히 적용된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운동선수들의 성적, 수업 출격처리를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이를 위반한 선생, 지도자들도 처벌을 받도록 했다. 학생선수의 입학, 성적, 수업 출결 처리는 청탁금지법이 규정한 부정청탁 대상 직무에 해당하므로 사실과 다르게 처리하도록 청탁하는 것은 부정청탁에 해당한다.

 

3. 법 시행 후 변화되어가고 있는 현장의 인식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서 현장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현장 지도자 및 학생 선수들의 수업에 대한 시선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상윤 광신중 농구부 감독은 “지도자는 아이들의 적성을 파악해야 한다. 특히 초·중학교 때 공부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은 절대 운동 때문에 공부를 놓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한다.

 

엘리트 선수들의 수업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송산고 배구부 박희상 감독

 

송산고 배구부 박희상 감독은 “운동부는 방과 후 활동이다. 아이들이 수업을 모두 하고 그 외의 시간에 훈련을 하는 것이 맞다. 단체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면 스스로의 개인훈련으로 메꿔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성여고 농구부 안철호 감독 또한 “현재 오전, 오후로 나눠서 연습하고 있는데 제도에 맞추다 보니까 크게 불편함은 느끼지 못한다. 클럽 스포츠로서의 변화는 시대적 당위”라고 강조한다.

선수들의 생각도 변했다. 삼일상고의 에이스 가드 이주영(17) 선수는 “영어만큼은 사회에 나갔을 때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다. 혹시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면 특기를 살려 학교 영어 선생님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준호 선수는 “내가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은 농구부 코치님의 역할이 컸다. 나는 대회가 있어도 중간고사 4주전부터는 야간연습을 빠지고 공부를 했다. 코치님이 이해해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4. 한국 체육특기자 제도의 문제점 및 미국의 사례

 

그러나 최저학습제나 청탁금지법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단순히 수업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2013년 학교체육진흥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초·중·고등학교 학생선수들의 학사관리와 관련된 규정이 전무했다. 그나마 2010년 만들어진 최저학력제가 있지만 이 역시 허점이 많다.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대입특기자입학제도(출처 :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최저학력제와 청탁금지법은 수업을 들어야 할 의무를 강제할 뿐이지 열심히 공부해야 할 동기부여는 되지 못한다. 이는 한국의 입시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체육특기자들은 입시에 고교성적, 수능성적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경기 성적만 좋다면 대학진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스포츠 선진국인 미국은 다르다. 미국에는 체육특기자로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다양한 조건이 있다. NCAA 디비전Ⅰ소속 회원대학에 진학을 원하는 고등학교 학생선수는 먼저 NCAA Eligibility Center에 등록을 해야 하고 무려 16개의 필수과목 이수가 필요하다. 

필수과목에는 영어, 수학, 과학 등 기초과목이 포함되어 있으며 제2외국어, 철학 등 다른 과목도 포함되어있다. 단순히 수강하는데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필수 이수 과목들의 GPA(Grade Point Average, 평균 학점)와 대학입학시험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 또는 ACT(American College Testing)의 총합이 기준을 통과해야만  대학에 지원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5. 한국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

 

한국에서도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교육부가 발표한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2021년부터 기존에 권고 사항이었던 체육특기자 선발 시 학생부 반영이 의무로 변경되며 체육특기자 입시에도 교과 성적 및 출석 사항이 반영된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최저학력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2018년부터 체육특기자의 ‘전국대회 참가횟수 제한’을 폐지하고 체육특기자대회(훈련) 참가 일수를 수업일수의 1/3까지만 허용하며 최저학력 미달 시 의무적으로 대회출전이 제한된다.

 

고려대와 연세대, 2021년부터 체육특기자 입학 최저학력제 도입(출처 : 연합뉴스)

 

여기에 더해서 고려대와 연세대가 2021년부터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두 학교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한국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준호 선수는 장래의 희망을 한국 최초의 ‘서울대 출신 프로농구 선수’라고 밝혔다. 한국판 제레미 린(하버드대를 졸업하고 NBA에 입성한 동양계 포인트가드)이 그의 목표다. 하지만 제2의 꿈 또한 놓지 않았다. 그는 프로선수가 되지 못한다면 ‘농구 교사’ 혹은 ‘전문 농구전력 분석관’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를 위해 대학에 진학해서도 공부와 농구 두가지 모두 놓지 않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작은 바람을 전했다.

“운동선수가 무식하고 공부를 못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변했으면 한다.  나의 후배들은 운동도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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