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프부장 선생님의 고백
어느 골프부장 선생님의 고백
  • 황수연 기자
  • 승인 2018.03.29 14:2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들이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다”
비봉고등학교 골프부장 조중혁 선생님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2012년 KLPGA투어 이데일리·리바트 레이디스 오픈에서 깜짝 우승을 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이예정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이후 그녀는 각종 KLPGA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며 많은 골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은 어엿한 프로골퍼로 성장 했지만, 많은 운동선수들이 그렇듯 이예정 선수도 한때 심한 슬럼프에 빠져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구력이 짧음에도 자기를 앞서가는 친구를 보면서 굉장히 심한 심적 압박과 스트레스로 운동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때, 어린 이예정 선수에게 손 내밀어 그녀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선생님이 있었다.

 

비봉고등학교 골프부장 조중혁 선생님의 이야기다. 당시 조중혁 선생님은 이예정 선수에게 잠시 운동을 접고 학교 수업에 전념해 보라고 조언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약 3개월 동안 그녀는 골프를 잊고 학교 수업에 몰두했다. 그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그녀는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이후 그녀는 경기도 회장배 골프대회 우승, 경인일보배 전국중·고등학생골프대회 여고부 우승, KLPGA 그랜드 점프투어 5차전 우승, KLPGA 그랜드 점프투어 6차전 우승, KLPGA 롯데스카이힐 성주C.C컵 점프투어 12차전 우승 등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조중혁 선생님은 제자 이예정 선수의 이런 성공담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비봉고등학교는 2005년에 골프부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골프 발전의 산실 역할을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PGA에서 한국 선수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는 것도 계기가 됐다. 조중혁 선생님은 그때부터 이 학교의 골프부를 책임지는 골프부장을 맡고 있고, 한국중고등학교골프연맹 전무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40여 명의 학생들이 미래의 골프왕, 골프여왕을 꿈꾸며 열심히 기량을 연마하고 있다. 이 골프부에는 비봉중학교 일부 학생들도 같이 참여 한다.

 

골프는 개인 운동이다 보니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프로들이 각자 따로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골프를 하는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학생의 심리 상담이나 경기 분석 정도다. 학생들이 겪는 고민들을 귀담아 들어주고 그들이 각종 스트레스와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조중혁 선생님의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학업과 골프와 병행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도에는 비봉고등학교 이외에도 골프부를 두고 있는 학교가 다수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학교에 대한 인기가 단연 높다고 한다. 그 이유를 학생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고 겸연쩍게 대답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빠른 시간 내에 좋은 성적을 원하는 사회이다 보니 학생들이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굉장히 크다고 진단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입장과 눈높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니 학생들도 마음을 터놓고 다가온다고 한다. 수시로 골프부 학생들과 라운딩이나 등산을 하기도 하고 바다에 나가서 함께 부대끼며 놀기도 하면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학생들과 더 가까워지는 비결이란다.

 

골프 선수 제자들의 뒷바라지를 해오면서 선생님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엘리트 스포츠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안타까움도 쌓여갔다고 한다. ‘운동선수에게 과연 학업이란 어떤 의미일까?’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이었을 것이다.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하면 되지 학업까지 충실하게 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학업과 운동을 균형 있게 병행시키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편안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은 학습권보장, 최저학력 이수 때문에 학교와 운동을 병행해야한다”며 실기나 다른 교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정상 수업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출석일수 3분의 1의 범주 내에 연습 라운드나 대회 출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만 해도 “4월 9일 재주도지사배부터 시작해서 8월까지 시도협회, 중고연맹, 대한골프협회 등 최소 13회 이상 출전 한다” 면서 거의 격주로 치러야 하는 시합이다 보니 시합에 대한 스트레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처음엔 재미있어서 시작하지만 점점 부모의 기대치가 커지다 보면 온전히 학생한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다. 그러면 아이들도 즐겁게 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체육으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편안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좋아서 운동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소신을 진지하게 밝혔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환경인 미국에는 운동선수에만 특화된 학교는 없다. 보통,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오전 7시에 등교하여 오후 2시 정도까지 수업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모든 학생들이 다 운동을 하러 간다. 사실상 학생 운동선수들만의 특별한 스케줄은 없는 것이다. 미국의 학교는 일정 학점을 채우지 못하면 아예 선수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수업 이수는 당연한 일이고 예외는 없다. 오후 2시에 수업이 끝나고 모두 운동 하러 가면 그 때 선수들끼리 모여서 훈련을 시작한다. 다른 일반학생들의 운동시간에 함께하는 것뿐이다.

 

조중혁 선생님은 극소수의 특정 엘리트 선수를 기대하기보다 그의 사랑하는 모든 제자들이 골프를 진정으로 즐기면서 그들의 무한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는 선수로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대한 긴 안목으로 운동선수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도 제자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참 스승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이예정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학업을 권유했던 선생님의 혜안이 더욱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지영 2018-03-30 23:47:49
감독님!
멋있고 존경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감독님같은 분이 계심으로해서
한국 골프꿈나무들의 미래가 더욱 밝아질꺼에요

손병율 2018-03-30 08:55:50
조중혁 선생님의 훌륭한 지도와 가르침으로 한국 골프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