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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직전의 판타지스타, 오산고 10번 이인규가 한국축구에 던진 돌직구
멸종 직전의 판타지스타, 오산고 10번 이인규가 한국축구에 던진 돌직구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4.0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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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 포기할 생각 전혀 없어 … 나만의 축구로 세계무대에 도전 하겠다”

피지컬과 투지의 강함이 사랑받고 있는 시대다. 압박과 탈 압박이 주를 이룬다.

이런 주류는 공격수들에게도 수비적인 능력을 강요하게 했다. 볼을 오래 가지고 있는 선수는 동료들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드리블은 조직적인 플레이를 끊어버리고 동료들의 움직임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좋을 만큼 드리블을 허용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의 옷을 벗어버리는 12살 까지다. 

 

이인규(180cm/75kg, 10번, F, 3학년)

 

현대 축구의 수비는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선수들이 공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드리블로 상대를 제친다 해도 곧바로 다른 수비수들이 달라붙는다. 잠시만 볼을 끌어도 두세 명의 수비들이 압박해 들어오는 현대축구에서 뛰어난 기술만으로는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한 기분으로 만들었던 참된 재능들은 이제 감독들과 대립하는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런 축구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선수가 있다. FC 서울 U-18 오산고의 10번 이인규(181cm/73kg, F, 3학년)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까지 본 어떤 선수보다 당찼고 어떤 선수보다도 명확한 소신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선수보다도 축구에 대한 고집이 있었다. 적어도 현재 한국 유소년 축구계에서는 나오기 힘든 선수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문체부장관기 준결승전에서 기록한 이인규의 헤더 선제골

 

가볍게 지난달 끝난 ‘문체부장관기’ 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문체부장관기에서 총 3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4강에서 보인고에 발목이 잡혔다. 보인고와의 경기는 오산고에게는 뼈아픈 경기였다. 준결승 당일에는 바람이 무척 많이 불었다. 그래서 양 팀 모두 좋은 플레이를 펼치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잔 패스를 많이 하는 오산고에 불리한 여건임에 분명했다. 이인규 또한 그러한 점을 인정했다. 당시 준비했던 전방 압박이나 전방에서 계속 싸워주고 버텨주는 것에 실패해서 볼 소유가 안 되다 보니 역습을 당한 것이 패인이라고 그는 회고한다.

이인규는 인천 남동초와 서울 오산중을 나온 선수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이미 전국 No.1의 선수였다. 각종 스카우트 대상 1호였던 선수였다. 이인규는 중학교 3학년 당시 금산중과의 추계대회 결승전에서 2골 1도움의 원맨쇼로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대회 MVP와 득점상은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당시 이인규의 위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산중 시절의 이인규 - 오산중 시절에도 그의 등번호는 10번이었다

 

그는 개성이 강한 선수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연고인 인천 대건이 아닌 서울 오산에 온 이유를 물어보니 오산이 훨씬 좋은 팀 이라서란다. 이인규의 아버지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운동을 잠깐 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축구를 계속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한을 이인규에게 담았다. 

그런 아버지의 안타까움을 이어받은 이인규는 천재성을 인정받은 선수가 되었다. 서울 오산고에서 에이스 넘버인 10번을 달고 뛰니 프로 입성 여부를 떠나서 대성한 선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스타일이 있는 선수다.  감독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실이 될 수도 있는 선수라는 의미다. 

그는 판타지 기질이 충만한 선수였다. 수비보다는 공격 쪽에 치우쳐 있고, 큰 축구보다는 작은 축구에 특화되어있으며 조직적인 움직임보다는 창의적인 움직임을 선호한다. 그는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서 주저 없이 ‘테크닉’ 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자신 있는 것이 공을 다루는 기술이고 드리블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정도로 강한 개성과 특징이 있는 선수는 감독의 전술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드리블로 대한민국 최고가 되겠다는 이인규

 

그에게도 참으로 많은 굴곡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축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 선수다. 당당히 오산 중학교에 진학했고 신나게 축구를 했던 그에게 중2 때 위기가 왔다. 당시 감독이 이인규의 플레이에 제동을 걸었다. 드리블을 전혀 못 하게 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슬럼프로 이어져서 축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위기는 고교 진학 후에도 계속 되었다. 오산고는 티키타카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고 볼 터치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많은 선수가 볼 소유를 하고 빠른 패스로서 빌드업을 만들어나간다. 당연히 드리블을 하는 횟수는 제한된다. “이전 감독님이 계실 때는 아예 드리블을 못하게 해서 내 플레이가 많이 살아나지를 못했지만 이번에 새로 오신 명 감독님이 내 개성을 확실히 살려줘서 너무 좋다”고 그는 말한다. 

그를 섀도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도 명진영 감독이다. 자신의 소질을 알아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지금 그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좁은 공간에서도 공을 잘 다루는 이인규

 

그에게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의지에 찬 눈빛으로 개인 연습이라고 이야기한다. 훈련 때 드리블을 금지당해도 끊임없이 혼자서 기술훈련, 드리블 훈련을 계속했다. 혹시 현대 축구에 맞는 스타일로 전환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니 단호하게 “내 스타일대로 나갈 것이다. 나의 축구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는 부러질지언정 굽힐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그 스스로가 한국 축구 스타일과 안 맞는 부분이 많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지나치게 개인을 제약하고 팀으로 움직여야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 너무 혼자 하는 플레이를 하다 보니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다고 회고한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팀에서 자신을 인정해주고 하나로 뭉쳐서 축구를 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같은 방을 쓰는 정한민이나 김성윤과의 호흡도 좋아보였다. 모두 중학교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찰떡궁합의 공격진이었다. 

이인규는 센터포워드 치고는 왜소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 또한 몸이 생각만큼 불지 않아서 고민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돌파도 역시 본인 스타일대로다. 패스, 창의력 있는 돌파, 드리블 등으로 밀고나가겠다고 당차게 이야기한다. 

 

센터포워드 정한민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이인규

 

그래서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일본진출이다. 고교 졸업 후 일본 진출을 생각하는 선수는 처음이라서 깜짝 놀랐다. 그는 오밀조밀한 일본 축구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스스로 아기자기 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교토퍼플 상가에서 에인트호벤으로 간 박지성과 같이 일본 가서 자리 잡고 선수생활 하다가 유럽진출 노릴 수 있으면 노려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팀의 10번이다. 10번은 에이스 번호이면서 팀의 판타지스타를 상징하는 번호다. 그에게 10번의 무게감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 역시 10번의 무게에 대해서 체감하고 있는 듯 했다. 코치님이나 감독님이 그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이후 아직 연령별 대표에 들어간 적이 없다. 이정도 기량의 선수가 연령별 대표 팀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 또한 그 부분에서 많이 속상해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대표 팀 감독님이 바뀌면서 그때부터 본인이 외면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힘과 피지컬이 좋은 저돌적인 선수를 많이들 선호하다 보니 스스로가 외면 받는 것에 속상해했다.

일본에 가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의외의(?) 겸손한 멘트를 하는 이인규. 하지만 올 시즌 목표에서는 다시 이인규다운 원대함이 풍겨져 나왔다. 겨울 대회 시작하기 전에는 전관왕이 목표였었는데 일단 한 대회에서 우승에 실패했으니 나머지 대회는 무조건 우승하고 득점왕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만의 축구로 세계무대에 도전하고 싶다는 이인규

 

그는 판타지스타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멸종직전의 판타지스타다. 지금은 피지컬과 압박의 강함이 사랑받고 있는 시대다. 어린 시절부터 유소년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판타지아가 아니라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다.

이인규 같은 드리블러에게 주어진 공간은 점점 좁아만 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항거하며 자신만의 축구로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이인규. 그가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을 설레게 했던 80년대의 노스텔지어를 복원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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