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4-03-28 20:20 (목)
판소리 <오셀로> 작가 임영욱, 자신의 여성적 · 동양적 시선으로 원작을 바라본다.
판소리 <오셀로> 작가 임영욱, 자신의 여성적 · 동양적 시선으로 원작을 바라본다.
  • 황수연 기자
  • 승인 2018.08.03 16: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악으로 서부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음악적으로 잘 형성하는 것이 목표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판소리가 만났다. 판소리에 기반을 두어 동시대적인 주제와 감성을 다루는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의 판소리 <오셀로>가 8월 25일부터 9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녀(妓女)인 ‘설비(說婢)’를 통해 선보이는 판소리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 이야기다. 설비인 ‘단(丹)’은 극동의 ‘셰헤라자드’인 셈으로, <오셀로>를 단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여성적 · 동양적 시선으로 원작을 바라본다. 기녀라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단’은 이야기꾼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단순전달자에서 주체적인 해석자로 재설정한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1인 공연양식인 판소리에 기반하며, 인물구현(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아고 등)에 있어서 한국적 의상과 소품(부채, 다기, 인두, 쓰개치마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원작의 비극이 남성 중심적 세계관과 배타적인 정서(질투․분노)로 인해 빚어졌다면, 본 작품은 이에 대해 여성적 · 동양적 가치를 투영함으로써 대안적인 세계관을 구성할 수 있게 한다. 같은 맥락에서 ‘단’은 한국 고대기록 속의 이방인인 ‘처용’과 베네치아의 이방인 ‘오셀로’를 비교하는데, 이는 그 ‘시선’에 있어서 관음(觀淫)과 관조(觀照)의 대비를 이루며 원작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한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희비쌍곡선’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임영욱과 소리꾼이자 배우인 박인혜가 함께한다. 이들의 작업은 많은 경우 전통공연 보다는 연극, 뮤지컬, 퍼포먼스 혹은 강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이들이 장르와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으며 ‘더 적절하고 매력적인’ 표현양식을 찾는 데 작업의 초점을 맞추기 때문일 것이다. ‘판소리’는 이들이 각별히 좋아하는 음악이자 이야기의 방식으로, 이들은 판소리가 열어 보이는 넉넉함 품을 믿으면서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창단 2년 만에 [판소리 오셀로], [판소리 필경사 바틀비], [같거나 다르거나 춘향가], [어이하리 이내 마음은 오뉴월 버들마냥 swing, swing], [박흥보씨 개탁이라], [비단치마], [판소리 레겐트루데]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단단해진 팀워크로 작년에는 제5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부문 최우수상(2017/판소리 필경사 바틀비)을 수상하였다.

 

‘희비쌍곡선’의 작품 활동과 판소리 <오셀로>가 궁금해 연출가 임영욱을 만나보았다. 그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20대 때 판소리의 매력을 느꼈고 공연을 찾아다녔으며 내부 기획자로 일하기도 했었다. 생각했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문사 연출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극작과 연출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 ‘희비쌍곡선’을 시작하게 된 계기

 

2013년에 팀 이름 없이 인혜(소리꾼 박인혜)씨와 판소리로 ‘비단치마’라는 판소리 1인극을 같이 작업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에 ‘같거나 다르거나 춘향가’를 같이 작업했다. 여러 번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지향이 맞아 2016년 여름 ‘희비쌍곡선’이라는 이름으로 <판소리 필경사 바틀비>라는 작품으로 첫 공연을 올렸다. 이 작품은 4연을 했고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짧은 시간 동안 좋은 기회가 많았다. 2년 사이에 6~7작품을 하면서 팀워크가 단단해졌고 기본적으로 2인체제이다. 정통 텍스트와 서구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 판소리 오셀로는 어떤 작품인가.

 

1인 컨셉을 유지하면서 셰익스피어를 해야 한다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기본 조건이 있었고 원작은 기본적으로 존중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원작의 이야기를 비틀거나 패러디 할 생각은 없었다. 1인 판소리의 특징을 잘 살려야겠다고 생각해서 특유의 분위기와 태도에 중점을 두었다. 그 외 음악적으로 인혜씨가 출연자이지만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데 온전히 국악을 이용해서 서구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음악적으로 잘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 어떻게 접목시킬 생각을 했는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가지고 1인 판소리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와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구와 동양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텍스트가 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해서 이 자체가 우리에게 시도나 실험은 아니다. 그 너머에 이것이 어떤 색깔로 형상화가 되는지 우리를 더 즐겁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든다.

 

▶ 국악의 매력이 무엇인가.

 

국악은 근대에 자아의식을 가진 창작자가 생기기 이전에 생긴 음악이다. 집단의 정서에 기반을 둔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힘, 포용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색깔들이 개인주의가 밑바탕에 깔려있고 근대 시민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지금의 우리가 갖는 정서들을 직접적으로 포괄하기는 아주 어렵다. 지금 느끼는 사랑, 분노, 고독을 직접 표현하기에는 그 음악이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판소리는 양식 자체가 판소리 창작을 거쳐서 들려주는 간접적인 전달의 방식이다. 개인의 목소리화 한다는 것은 서양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나 아리아보다 더 탁월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끌어오고 그 이야기에 대한 태도를 직접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판소리 창작을 하기 이전에 판소리 애호가가 되었다. 창작의 영역이 아닌 정통 판소리 정통 음악을 보더라도 그 자체로 호소력이 있다.

 

▶ 원작과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1인 화자의 장점을 살린다. 중세 후기에 여전히 신분제 사회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생 이라는 설정을 했다. 신분적으로 약자고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적인 서구의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중점을 두었다. 이야기를 본인의 업이기 때문에 충실히 전달하되 전달을 하고 남는 미심쩍음, 그리고 여성이 남성의 질투나 간계 때문에 희생되는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동양적인 관점에서 초탈한다는 의미에서 마지막에 ‘치열한 이야기 속 삶을 잠깐 내려놓고 달빛아래서 춤을 추자’ 이란 말을 하면서 막을 내린다. 원작 텍스트의 긴장을 형성하는 것도 아주 오랫동안 해온 창작의 방식이긴 하지만 우리는 살짝 비켜서서 원작을 감싸는 쪽으로 진행했다.

 

▶ 연출부분에서 무엇을 중점에 두고 있는가.

 

연출적인 해석이나 양식이 이 작품에서는 전면에서 들어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소리꾼과 4명의 연주자들이 그들의 색깔이나 앙상블이 잘 들어나서 정통 양식과 서구 텍스트를 접목했다는 느낌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다. 판소리라는 양식이 어떤 텍스트도 끌어안을 수 있다는 포용력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분히 연출 적인 장면들이 있지만 연출로서 신경 썼던 부분은 음악감독이자 자창가로서 텍스트와 음악을 붙일 때 과연 판소리가 가진 호소력과 원작이 가진 의미를 서로 헤치지 않고 잘 만날 수 있는지를 촘촘하게 신경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