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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가장 빛나는 연출가 이보 반 호브의,21세기 유럽 연극계가 성취해낸 절대 걸작"로마 비극"
우리 시대의 가장 빛나는 연출가 이보 반 호브의,21세기 유럽 연극계가 성취해낸 절대 걸작"로마 비극"
  • 한국스포츠통신=배윤조기자
  • 승인 2019.10.0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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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통신=배윤조기자) 세계 연극계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연출가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가 인터내셔널 씨어터 암스테르담(Internationaal Theatre Amsterdam, 토닐그룹 암스테르담의 새 이름)과 함께 자신의 대표작 <로마 비극(Roman Tragedies)>으로 세 번째 내한 공연을 갖는다. 2012년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오프닝 나이트>와 2017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운틴헤드>를 LG아트센터 무대에 선보였던 이보 반 호브는 원작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탁월한 인물 해석, 무대와 영상을 아우르는 세련된 미장센(mise-en-scène)으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관객과 평단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며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보 반 호브
이보 반 호브

 

<로마 비극>은 이보 반 호브가 자신의 이름을 세계 공연계에 널리 각인시킨 대표작으로,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 <코리올레이너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엮어 만든 5시간 30분짜리 대작이다. 긴 러닝타임 동안 정해진 휴식 시간 없이 계속 진행되는 이 공연은 고전 텍스트에 새롭게 불어넣은 현대성과 시의성, 공연계의 익숙한 관습을 뛰어넘은 색다른 진행 방식과 공간 활용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극적 경험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일정한 규칙을 강요하기 보다는 민주적으로 관람할 것을 권장하는 이 공연에서 관객들은 러닝 타임 동안 자유롭게 무대와 객석을 옮겨가며 원하는 위치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원하는 때에 극장 안팎을 드나들 수도 있다. 관객들은 극장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마치 로마 시대의 의사당이나 광장에 나와있는 시민들처럼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를 자신의 눈과 귀로 직접 목격하게 된다.

 

2007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초연된 후 아비뇽 페스티벌, 런던의 바비칸, 뉴욕의 BAM 등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과 공연장들로부터 앞다투어 초청 받으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이 작품은 그 물적, 인적 스케일로 인해 극단으로서도, 초청자로서도 투어를 감행하기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2012년 첫 내한 이후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던 연출가 이보 반 호브와 극단 ITA는 LG아트센터와 장기간에 걸친 논의 끝에 내한 공연을 결정하고, 2018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려던 이 작품의 생명을 한국 관객들을 위해 조금 더 연장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로마 비극>은 서울 공연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종료하게 되며 세계 연극사의 한 장 속에 영원히 남게 될 예정이다.

 

로마를 구하고 영웅이 되었지만 오만하고 타협할 줄 모르다 민중의 적으로 몰리게 된 코리올레이너스. 그와 반대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로 권력을 얻었지만 공화정을 위협하고 독재자로 올라설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 의해 제거되고 마는 줄리어스 시저. 로마와 이집트를 둘러싼 급박한 정세 속에 나라의 운명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 공적인 책임감과 뜨거운 열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두 연인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이들 로마 시대 인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장대한 스케일로 현대적이면서도 대담하게 펼쳐진다.
복잡한 군중이나 전쟁 장면들이 생략되는 대신 셰익스피어 원작의 내러티브를 유지한 채 각 작품당 90~100여분 정도로 농축된 이야기들은 배경이 로마 시대이냐, 현대이냐를 구분할 것 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정치적 담론을 담아내며 시민이자 주권자이기도 한 관객들의 의식을 자극한다. 수트를 차려 입은 로마의 정치가들은 마치 현대의 정치인들처럼 지금 이 시대의 언어로 책략을 세우고, 논쟁하고, 협의하고, 뉴스에 나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설파하며 때로는 서로 치고 받는 육탄전을 벌이면서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대한 해석이나 로마 시대의 흥미로운 정치 연대기보다 더욱 빛나는 이 작품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장르와 공간의 경계,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시도하는 작품들은 끊임없이 있어 왔지만, 이전의 관습이나 선입견들이 현실적으로 꽤나 견고하게 존재해왔음을 상기한다면 관객들은 <로마 비극>을 통해서 생각이나 방식을 바꾸면 그러한 벽조차도 의외로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로마 비극>은 관객들에게 자유를 주고 스스로 어떤 관객이 될지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투명한 유리벽 사이로 여러 개의 회색 소파가 펼쳐지고, 전등이 드리워진 무대는 마치 컨퍼런스 라운지를 연상시킨다. 무대 안팎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드라마에 한층 더 극적인 효과를 더해주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는 관람하는 관객들의 시청각뿐만 아니라 그들을 따라다니는 라이브 카메라를 통해서도 동시에 포착된다. 관객들은 정해진 타이밍 마다 원하는 대로 객석에서 무대로 올라와서 다양한 위치에 앉아 각기 다른 시선과 각도를 통해 격분해서 독설을 쏟아내는 코리올레이너스나 잠 못 이루며 고뇌하는 브루터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마치 로마 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 그냥 익숙한 방식대로 객석에 계속 앉아서 묵묵히 역사적 사건을 관찰할 수도 있다.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은 눈 앞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또 다른 앵글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비춰주고, 전광판의 자막은 앞으로 다가올 격변을 마치 뉴스 속보처럼 예고하며 긴박감을 불러 일으킨다. 5시간 반 동안 연이어 휘몰아치는 사건과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관객들은 마치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듯한 로마의 인물들과 더불어 쉴 틈 없이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정치 게임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될 것이다.

 

<로마 비극>은 가장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가장 혁신적인 방식으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을 표방하며, 극장이 관습적으로 갖고 있던 많은 금기를 깨는 작품이다. 이에 진행에 크게 방해가 되는 소음을 유발하지 않는 한 공연 중 휴대폰을 이용해 무대 장면 또는 연기하는 배우들의 사진을 촬영한다거나 SNS를 통해 실시간 공연 소감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기존 공연장 로비 외에도 무대 위에 추가로 바(bar: 유료로 운영 예정)가 마련되어 객석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음식과 음료를 즐기며 관람할 수 있다. 원하는 때에 화장실을 간다거나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객석 출입문을 드나드는 것도 큰 제약 없이 가능하며, 무대나 객석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공연장 건물 안에만 있다면 곳곳의 스크린과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무대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마치 24시간 펼쳐지는 일상적인 정치의 한 순간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을 따라 현장성을 즐기면 된다. 이렇게 그 동안 익숙했던 방식과 금기를 벗어나는 자유롭고 능동적인 관극 행위를 통해 관객들은 전혀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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