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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임정 百주년](14) 시대를 앞선 사상가 안중근
[3ㆍ1운동.임정 百주년](14) 시대를 앞선 사상가 안중근
  • 한국스포츠통신
  • 승인 2019.01.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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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화폐 쓰는 지역공동체 110년 전 제안…"EU 구상보다도 반세기 앞서"
한·중·일 갈등 상황서 "미완의 '동양평화론' 재조명" 주장도

 

                                                                         안중근

1909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해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당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법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는 이토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동양평화를 위해 그를 이 세상에서 제거한 것이니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저술한 '동양평화론'에서는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하얼빈에서 시작했다"며 자신의 행동이 '동양평화'를 위한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안 의사가 죽음을 앞두고 그토록 강조했던 '동양평화론'은 1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양평화론'은 안 의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법정 투쟁을 하면서 남긴 두 가지 기록 중 하나다. 안 의사는 원래 5부를 계획했지만, 예정보다 일찍 사형이 집행되면서 서론과 '전감'(前鑑) 2부만 쓰인 채 미완으로 남았다. '동양평화론'이 그의 사상의 큰 뼈대를 설명한다면 이에 앞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법원장 면담 내용을 기록한 '청취서'에는 좀 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담겼다.

안 의사는 '일본과 한국, 청나라는 형제국가인 만큼 서로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이를 위해 일본은 우선 뤼순을 청에 돌려줘야 하고 이후 뤼순을 세 나라의 군항으로 두고 평화의 근거지로 삼자고 제안했다. 이후에는 뤼순에 동양평화회를 조직해 세 나라 국민 수억명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은행을 설립해 각 나라가 공유하는 공동화폐를 발행할 것을 제시했다. 세계열강에 맞서기 위해 세 나라의 청년을 모아 군단을 만들고 청년들에게는 두 나라 언어를 배우게 해 '형제나라'라는 관념을 공고히 하자는 의견도 냈다. 이렇게 되면 태국,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게 안 의사의 구상이었다.

 

                                                                     안중근 선생 공판기 (1946년)

오늘날 유럽연합(EU)처럼 공동화폐를 쓰는 지역공동체 구상이 이미 110여년전 나왔다는 점에서 안 의사의 선견지명과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펴낸 '안중근 동양평화론'에서 이 발상을 두고 "매우 참신하고 선진적"이라며 "당대 구미의 어느 지식인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며 EU 구상보다 반세기나 앞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안중근을 '아주(亞洲) 제일 의협(義俠)'을 넘어 당대 세계 최고의 지식인 및 평화사상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안 의사의 이런 생각이 독자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시각도 있다.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논문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본 안중근과 동양평화론'에서 "그 자신(안중근)이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많은 지식인과 언론 매체들을 통해 논의돼왔고 논의되고 있던 제안"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국제평화군 창설, 공동개발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과 관련해 비슷한 주장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 역시 "그에게만 귀속되는 독자적인 구상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안중근은 이를 바탕으로 재해석과 보완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평화이론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안 의사의 주장을 두고 당시 일본 중심의 '아시아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삼국제휴론, 삼국공영론, 아시아연대론 등 형태로 제기된 아시아주의의 침략적 속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안중근의 전쟁과 평화, 죽임과 죽음' 논문에서 "당시 일본에서도 동양평화론이나 아시아연대론은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귀결됐던 것이었다"면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이와 대척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동양평화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전쟁과 식민을 전제로 하는 '제국의 평화'였지만, 안중근의 지역공동체 창설을 골자로한 동양평화론은 '반제국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얘기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안중근 의사 의거 105주년 기념 동영상 나왔다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05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어·영어 동영상이 유튜브에 떴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가수 윤종신은 '한국인이 알아야 할 인물 이야기- 제1탄 안중근 편'을 유튜브에 한국어(http://is.gd/MvLO4O)와 영어(http://is.gd/YmVaah)로 각각 제작해 공개했다. 6분 분량의 이 동영상은 안중근 의사 의거 소개, 현재의 안중근 추모 분위기 및 재평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동양평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미완으로 남았고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노골화하는 일본의 신군국주의 움직임과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 그리고 한ㆍ중ㆍ일간의 끊임없는 역사ㆍ영토 갈등 등 여전히 불안요소가 상존하는 한반도 주변 상황을 고려할 때 110년이 지난 오늘도 그가 지향했던 평화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한때 활발히 논의되다 최근 몇 년간 한·중·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주춤했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 동양평화론이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올해 하반기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중국에서 열 계획이다. 학술대회에서는 동양평화론과 연관 지어 한·중·일 공동체의 역사적 변천과 현황도 살필 계획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김현철 박사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사상 그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한ㆍ중ㆍ일 간 지역협력이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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