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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태극마크 반납?' 국가대표 박철우에게 한국 배구의 미래를 묻다
[심층 인터뷰] '태극마크 반납?' 국가대표 박철우에게 한국 배구의 미래를 묻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20.02.16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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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은 배구 팬들에게 가슴 아픈 날이다.  
한국 남자배구의 올림픽 진출이 또다시 좌절된 날이다. 2004년 이후 16년째다. 하지만 중국 장먼에서 열렸던 올림픽 예선전은 큰 반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4강에서 아시아최강 이란을 상대로 한 2-3 패배. 최근 상대전적 1승 13패의 세계랭킹 8위 이란을 상대로 예상치 못했던 선전이었다. 

그 중심에는 최고참 박철우가 있었다. (한선수와 동갑이지만 생일이 5개월 정도 빠르다). 박철우는 이날 23득점을 뽑아내며 4세트 역전승의 중심에 섰다. 박철우는 15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였다. 삼성생명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박철우의 표정은 그래서 훨씬 더 지쳐 보였고, 또 더 허무해 보였다. 아직도 그때의 그 순간 장먼의 경기장에 서 있는 것처럼. 

 


1. "대표팀, 여전히 불러주시면 영광 … 하지만 내가 나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가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은 2005년. 횟수로만 15년째다. 하지만 아직 한국배구에는 박철우를 능가하는 라이트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지금도 대표팀 명단을 꼽으라면 박철우는 1순위에 꼽힌다. 과연 박철우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는 것인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대표팀 은퇴 여부를 물었다.  

 

 

삼성생명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국가대표 라이트 박철우

 


▼ 아직도 많이 기억이 많이 남을 것 같다. 힘들지 않나. 
워낙 치열한 경기를 했다. 5일 동안 4경기를 해서 스코어도 3대2까지 가서 많이 지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충격은 ‘허탈감’이다. 워낙 큰 스트레스였다. 압박감도 있고, 목표도 있었다. 목표만 보고 달리다가 그것이 무산되었으니까.... 경기 자체가 쉽게 끝났으면 모르겠는데, 마지막 공 한 개로 끝났으니 이 상실감을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다. 이제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것인가. 
대표 팀에 차출된다는 것은 영광이다. 어렸을 때는 잘 모르고 갔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국가대표를 하면서 이뤄내고 싶었던 목표가 더 강해지더라. 그래서 더 간절했었다. 국가대표는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아마 나를 뽑지 않을 것이다.(웃음) 만약에 내가 필요하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겠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보면 후배들이 경기를 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욕심을 부리면 후배들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대표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 박철우

 

 

▼ 결승에서 중국이 이란에게 너무도 손쉽게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더 아쉽다. 만약 이란만 꺾었다면 우리가 올림픽에 나갈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그날 경기가 기억에 난다. 

▼ 카타르 전 이전까지는 비난의 화살을 많이 맞기도 했다. 속상하지 않았나. 
속상하지는 않았다. 사실 호주전 때 너무 아쉬웠다. 아직도 기억난다. 15-14에서 16-14로 끝낼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끝내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엇박자가 많이 났었는데 인도전에서 공격 한 2개가 너무 잘 맞았다. 그때 선수와 눈을 맞추면서 ‘이거야’ 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이후 좋은 리듬이 나왔던 것 같다. 

 


2. 1승 14패의 통곡의 벽 이란, 왜 이란이 이기기 힘든가

무려 1승 14패다. 이란 배구는 이미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과연 이란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상대하기 힘든 것일까. 

 

 

이란전 1승 14패.... 아쉬운 2-3 패배

 


▼ 이란 전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그때 참 몸 상태가 좋아 보였다. 
아니다. 체력이 떨어져 있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경기를 하면 할수록 리듬이나 타이밍은 좋아진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선수랑 호흡을 맞췄지만, 이번이 제일 잘 맞았던 것 같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제는 좀 맞아 들어갈 만하고, 해볼 만하다 싶었는데 끝나버렸다.(웃음) 

▼ 최근 국가대표 전적 1승 14패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이란이 상대하기 힘든 것인가. 
체격 조건이 유럽권에 있는 선수들만큼 좋다. 거기다 워낙 배구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 아시아대회는 웬만하면 이란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자국에서 열리다 보니까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고 성적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 리그 자체도 상당히 활성화되어있다고 하더라. 이란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팀도 많이 올라왔다. 우리가 뒤쳐진 것인가, 다른 팀들이 올라온 것인가 생각해보면 두 가지 모두인 것 같다.  

▼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 보면 윙 스파이커의 공격력은 우리가 낫지 않았나.  
음.. 사이드에서는 비슷했었던 것 같다.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높이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예를 들면 신영석은 국내에서는 리딩블로킹을 해도 충분히 바운드를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외국 선수들은 워낙 높이가 높아서 맨투맨을 뜨지 않으면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맨투맨을 뜨면 사이드에서 원 블로킹이 나올 확률이 너무 높아진다. 그래서 함부로 맨투맨을 뜰 수가 없다. 

상대도 우리 센터가 작다고 생각하니까 속공을 많이 쓰더라. 아득한 저 위에서 강하게 때려 박아버리면 선수들은 위축감이 생긴다. ‘뜨면 잡을 수 있겠다’ 와 ‘떠도 못 잡겠다’는 큰 차이가 있다. 이란 전에서 유효블록은 예상보다 잘 되기는 했다. 하지만 블로킹 개수에서부터 너무 큰 차이가 났다(7-17). 

 


3. 국가대표에 대한 지원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15년이 걸렸다” 

애국심으로 국가대표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무언가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현재의 국가대표는 아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말 그대로 희생만 강요되는 시스템이다.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렇게 지원을 해주셨는데 결과를 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의 고백은 그래서 아픈 칼날처럼 가슴에 박혀 든다. 

 

 

여전히 열악한 대표팀에 대한 지원

 

 

▼ 국가대표의 지원이 이번에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예전에 비하면 좋아진 것이다. 처음 대표팀 뽑혔을 때는 코치님 한 분, 한의사 한 분, 감독님 한 분 딱 3명이었다. 전력분석관과 트레이너도 없었다. 청소년대표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시합 직전에 유니폼이 나오는 일이 허다했고, 늘 22시간동안 ‘이코노미클래스’를 타고 이동하곤 했다. 그나마 지금은 각 소속 팀에서 ‘비즈니스클래스’ 항공권도 지원해주고 코치님도 2~3명 계신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노력해주시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지원해주셨는데 결과를 이렇게밖에 내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를 15년 동안 국가대표로 있으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 사실 선수들은 국가대표에 나가면 얻어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전혀 없다. 그래서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팀에 있으면 지원받을 것을 다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다. 그런데 대표팀에 가게 되면 다쳐가며, 몸이 상해 가며, 체력 떨어져 가며, 정신적 타격받아가며 운동해야한다. 거기다 성적이 안 나오면 욕은 욕대로 먹어야 하고 금전적인 지원은 전혀 없다. 소속 팀에서도 당연히 싫어한다. 문성민 선수처럼 십자인대가 나가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이 이번에 이렇게 절실했던 것은 올림픽이라는 꿈 그것 하나뿐이었다.     

 

 

대표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철우

 

 

▼ 대표팀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할까.
노력은 해주시는데,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이 정도까지 오는 데 15년 걸렸다. 지금 정도 수준이 15년이 걸렸다고 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선수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낼까’  고민해주시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해 ‘이것 좀 해달라’고 요구를 하면 ‘성적을 내고 이야기하라’고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러면 우리로서는 할 말이 없다. 

▼ 이번에 회식이나 격려금은 없었는가. 
회식을 시켜주려고 하셨는데 우리가 안 한다고 했다.(웃음) 졌는데 무슨 회식이냐며 선수들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격려금은 출국하기 전에 조금 있었다. 대표팀 전체에 2만 불정도 나와서 그것을 똑같이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가졌다. 

▼ 이번 대표팀의 팀워크는 역대 최강이라는 말이 많다. 비결은 무엇인가. 
올림픽에 대한 목표가 워낙 간절했다. 또한, 컨디션도 시즌 중이라 전체적으로 좋았다. 훈련할 때 아픈 사람이 없었다. 내가 너무 싫어했던 옛날 대표팀의 선후배 문화도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선수들 하나하나가 편하게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것 같고, 무엇보다 신영석이 주장으로서 너무 잘 이끌어줬던 것 같다. 
 

 

4. ‘국가대표 최고참 박철우에게 한국 배구의 미래를 묻다 

비록 패했지만,  배구는 계속된다. 당장 2년 후, 4년 후에도 한국배구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향해 도전해야 한다. 장신화는 궁극의 목적이지만 지금 당장 이뤄낼 수는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세계와 맞서기 위해 한국 배구가 취해야 하는 스타일은 무엇인가. 그에 대해 박철우는 본인의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국가대표 최고참 박철우에게 한국배구의 미래를 묻다

 

 

▼ 용병제로 인해서 한국배구가 많이 위축되었다는 이야기를 팬들은 많이 한다.  
장단점이 있다. 용병이 있어서, 외국선수들에 대한 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경기를 뛰어본 선수만이 용병의 높이나 파워를 느낄 수 있다. 이제는 굉장히 익숙해졌다. 다만, 용병 대부분이 라이트라는 것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분명 있다. 36살을 먹은 내가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다. 라이트 포지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다들 기피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 부족한 신장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당장 4년 뒤에도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배구 스타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견해가 듣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면 답이 나와 있다. 일본의 배구 스타일이 기술적으로만 봤을 때는 아시아배구가 나갈 방향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어려운 볼을 리바운드를 통해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내고. 기회가 왔을 때 확률 높은 공격을 하고 리시브나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매우 강력해져야지 큰 신장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신장이 큰 외국 선수들도 3블록이 오면 어려운 볼이 오면 연타를 통해 다시 만들어가는 것을 많이 하더라. 그런데 일본은 정말 많이 하더라. 공격 성공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찬스가 날 때까지 정말 집요하게 붙이더라. 

▼ 오늘 인터뷰 너무 감사드린다. 마지막 질문이다. 박철우 선수는 국가대표로서 수많은 경기에 나섰다.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15년을 국가대표를 해 왔으니 기억나는 경기는 많이 있다. 사실 잘한 경기도 있고 이겼었던 경기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 아쉽게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 이번 이란 전에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인 것 같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국스포츠통신 전상일 기자(nintend]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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