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임창용, 그를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진실
[단독인터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임창용, 그를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진실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9.05.21 23:08
  • 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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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 석 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마무리투수. 한-미-일을 모두 경험했고 열도를 평정했던 투수. 현재 팔 각도를 바꿔서 던지는 변형 사이드암의 원조이기도 하며 엄청난 유연성과 후퇴란 모르는 싸움닭 기질로 야구팬을 매료시킨 사이드암의 교과서 같은 선수가 바로 임창용(43.전 KIA타이거즈)이다. 기자의 입장을 떠나서 은퇴선언을 한 지 불과 2달밖에 되지 않은 그를 직접 만나는 것은 기자가 되고 첫 출근을 하던 그 날 이상으로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설렘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기자의 가슴을 잠식해나가는 또 하나의 감정은 두려움. 임창용은 풍운아로 유명하다. 악동, 문제아 등이 임창용을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다. 거기에 인터뷰를 하루 앞두고 김기태 감독이 사퇴하는 변수가 발생했다. 과연 임창용은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 인터뷰를 승낙한 것일까. 그리고 기자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인가. 취재현장에 가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은 내내 복잡하기만 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전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과 무언가를 듣고 싶어 하는 어느 무명기자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 풍운아 임창용 “야구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 저녁 7시를 좀 넘어서 모 호텔에서 임창용을 만났다. 여전히 날씬한 투수의 몸을 하고있는 임창용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그는 오랜만에 가족과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야구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 두 아들, 일본에서 만났다는 아내와 함께 서울 근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늘 해외에, 그리고 지방에 있어야만 했던 인생 중 유일하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라며 그는 웃는다. 아마 그는 지금도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그의 표정에서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한마디를 기대했다. 그러나 임창용의 첫 마디는 예상보다 무겁고 또 강했다. "선수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   

 

 

서울 모 호텔에서 만난 임창용 전 KIA타이거즈 선수

 


Q) 만나게 되어서 반갑다. 일단 최근 근황을 물어보고 싶다.  
A) 요즘에는 그냥 놀고 있다. 이것저것 은퇴 후 구상도 하며 즐기고 있다. 최근에는 취미로 골프를 자주 친다.  

Q)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니까 좋지 않나. 
A) 항상 내가 일본, 미국, 광주 등 먼 곳에서 야구를 하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했는데 이제야 우리 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야구보다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교실을 다닌다(웃음). 

Q) 지난 3월 11일 은퇴선언을 하셨다. 갑작스럽게 은퇴선언을 한 배경이 있을까. 
A) 모든 구단의 프런트- 감독들은 대부분 나를 안 좋아하더라.  나보다 어린 코치들도 많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 같다. 선수인데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다 보니 아마 다른 팀에서 나를 데려가기는 불편했을 것이다. 퇴출 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다른 팀에서도 나를 받아들이기는 어렵겠구나 싶어 은퇴선언을 한 것이다. 

Q) 정말 단 한 곳도 영입제안이 없었나. 물론 ‘다루기 힘든 선수’라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구단이 임창용 선수를 안 좋게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A) 물론 몇 군데 영입 제안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이야기만 오가고 결정이 안 나더라. 아마 내가 워낙 다루기 힘들고 문제아 이미지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나도 잘한 것은 없다. 충돌이 많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Q) 호주나 대만 진출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 해봤는가.
A) 멕시코 - 대만 - 호주까지 다 생각을 해봤는데 딱 1년 더 하자고 굳이 그 먼 곳까지 가족들을 내버려두고 야구를 하러 가야 할까 싶더라(웃음)

Q)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다. 선수로는 정말 더는 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인가. 
A) 선수 희망은 버렸다. 은퇴선언까지 한 마당에 무슨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겠는가. 전혀 없다. 선수를 포기한 지는 꽤 되었고 다시는 선수 생활을 안 하겠다는 마음으로 은퇴선언을 했다. 

 

2. “김기태 감독님 사퇴 심경 복잡 … 나는 오직 1년만 더 타이거즈와 함께하고 싶었을 뿐” 

< 임창용은 아직도 기아타이거즈에 꽤 나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모든 경기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아타이거즈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흐름에 대해서도 그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그저 1년만 더 기아타이거즈와 동행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 마지막 1년을 함께 하지 못하게 만든 그 직언이 지금은 다소 후회된다고 말이다. > 

 

 

"나는 타이거즈와  1년 더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다" (출처 = KIA타이거즈)

 

 


Q) 며칠 전 김기태 감독님이 사퇴하셨다. 굉장히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다. 
A) 좀 안타까웠다. 일단 내가 머물렀었던 팀이고 내 고향 팀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기아가 대략 44경기 정도를 했는데 모든 경기를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전부 봤다. 아쉬운 경기도 많이 있었고, 부상선수도 많아서 현재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워낙 감독님께서 자존심이 강하셔서 스스로 물러나신 것 같다. 

Q) 사실 임창용 선수는 기아에 입단하는 과정 자체가 순탄치 않았다. 도박사건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렇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런 직언을 한 것이 후회되지 않던가.  
A) 솔직히 후회된다. 좀 더 참을 걸 많이 후회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수는 이미 저지른 것이고 팬들에게 훗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아쉽다. 

Q) 한 번 더 확인하고 싶다. 임창용 선수가 구단에 먼저 방출을 요구하신 것은 절대 아닌 것 맞는가. 
A) 아니다. 내가 그 상황에서 왜 풀어달라고 했겠나. 나는 아직 공을 던질 수 있고, 내 몸이 허락할 때까지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이가 많다 보니 주변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임창용과 주장 김주찬(출처 - KIA타이거즈)
임창용과 주장 김주찬(출처 - KIA타이거즈)

 

 

Q) 그렇다면 FA를 포기하고 기아에 남고 싶었던 것은 맞나.  
A) FA가 무엇인가. 나는 딱 1년만 더하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만 더하고 싶어서 방출 통보를 받고도 웬만하면 조용히 나가려고 '알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나는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팀에서 1년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이후에 생각을 해보니 내가 몸담았던 팀에서도 나를 불편해하는데 다른 팀에서는 얼마나 불편해할까 싶어서 빨리 포기를 한 것이다. 

Q) 조계현 단장님께서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창용에게 코치직이나 은퇴식을 제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 같다"라고 말한바 있다. 
A) 그것은 형식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이미 구단에서는 결정이 내려졌고, 나에게 전달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는데, 조 단장님께서 직접 이야기를 하신 것 같다. 나로서는 시즌이 끝났고 FA를 행사하지 않고 남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그 시기에 나를 부른다는 것은 당연히 재계약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막상 가니까 방출 통보 자리였다. 조 단장님은 나와 야구 선후배 사이다. 그러다 보니 말씀을 편하게 하시더라. “야구 더 할 거지?” 라고 바로 물어보시더라. 나는 당연히 "예 할 겁니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면 우리와 인연은 다 된 것 같다. 현장과 협의해서 결정 난 상황이니 방출을 하겠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 순간 할 말이 없어서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나오고 나니까 뒤에서 화가 나더라. 

 


3. 왜 임창용은 선수 생명을 걸고 김기태 감독에게 직언할 수밖에 없었을까.  

< 작년 6월 초 그 사건은 기아타이거즈에나 임창용에게나 중요한 사건이었다. 임창용으로서는 선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계기가 되었고 기아타이거즈도 그 사건으로 인해서 팬들의 많은 지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기태 감독의 사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임창용은 왜 그때 그렇게 폭발할 수밖에 없었고 또 선수생명을 걸고 직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  

 

 

임창용은 왜 선수생명을 걸고 직언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출처 = KIA타이거즈)

 

 


Q) 이미 언론에 공개되기는 했지만, 그 사건을 다시 한 번만 더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제 더는 이 사건을 되짚어볼 기회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건은 임창용 선수 개인에게도, 기아타이거즈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A) 6월 6일 KT전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마무리로 던지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도(6월 3일을 지칭) 2이닝을 던지고 세이브를 했다. 그런데 수요일 KT전에서 우리 팀이 4-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나는 준비가 다 끝난 상태이고 9회는 내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몸도 안 풀고 있는 (김)윤동이를 올리더라. ‘왜 이런 운영을 할까. 분명 나라는 존재가 그 자리에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더라. 나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줬으면 화가 안 났을 것 같다. "내가 별로 안 좋으니 윤동이를 키우고 싶다거나, 내가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얼마 못 버틸 것 같으니 어린 선수를 키우고 싶어서 너는 뒤에서 희생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허심탄회하게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으면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마무리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1~2년 야구만 더 하고 싶었을 뿐인데. 


Q) 기자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윤동 선수를 기용한 것이나 보직을 바꾼 것이 핵심이 아니라 임창용 선수에게 일언반구 통보도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몸도 안 풀고 있었던 김윤동 선수를 기용한 것이 핵심인 것 같다. 
A) 그렇다. 애당초 게임 전이던, 등판 1시간 전이든 하루 전이든 선수에게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줘야 선수도 준비할 것 아닌가. 감독님이라면 그 정도는 이야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운영을 할 테니 선수들은 이렇게 따라오라"고 말하면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감독님이 그렇게 하신다는데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다. 아무런 말도 없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통보를 하니 선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분명히 내가 나갈 타이밍이고 내가 준비가 다 끝났는데 나를 안 쓰면 나라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김기태 감독님께서는 스타일 자체가 모든 경기를 감독님이 전부 책임을 지려고 하신다. 그래서 가끔 보면 너무 부담스러워 보인다. 선수들도 연봉을 받고 있고 선수들만의 위치가 있는데 굳이 그렇게 모든 짐을 안고 가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이야 뭘 모르니까 나가라면 나가고 들어오라면 들어오지만, 베테랑 같은 경우에는 야구를 오래 했기 때문에 자기만의 루틴 그리고 책임감이 있다. 그런 책임감을 존중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Q) 당시 분위기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있는데 임창용 선수가 본인의 프라이드 때문에 그에 대한 불만을 느꼈고 그로 인해 팀 분위기를 망가뜨렸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임창용 선수도 마음이 많이 안 좋았을 것 같다. 
A)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 자리를 후배에게 빼앗긴 것이 화가 나서 삐지고 질투하고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맹세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세이브, 홀드 뭐 이런 기록에 연연할 필요성이 있는가. 이렇게 굴러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딱 한 번 이야기한 건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 

Q) 그런데 사실 임창용 선수가 그 한 사건만으로 그렇게 욱했을 것 같지는 않다. 
A) 내가 갑자기 그랬겠는가. 기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거의 3년을 참았다.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은 팀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참고 넘어간 것이 많았는데 그 날은 못 참겠더라. 그래서 한번 터트린 것이 나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온 것 같다. 김기태 감독님은 선배로서, 남자로서는 정말 최고다. 다만 성격이 내가 봤을 때는 나랑 똑같은 것 같다. 성격이 비슷하니까 자꾸 부딪히는 것 같다. 

Q) 코치님에게 그런 이야기는 왜 안 했는가. 
A) 이대진 코치님과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 코치님과 나는 진흥고 2년 선후배다. “코치님 운영을 이렇게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선수들이 힘들어합니다. 저도 힘듭니다. 그날그날 딱딱 역할을 정해주십시오. 우리가 알아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코치님이 감독님께 그 말씀을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코치님께 수없이 말씀드렸다. 

 

 

7월 갑자기 선발로 전환한 임창용 (출처 = KIA타이거즈)

 

 

Q) 그 사건 이후 후배 투수와 이야기를 해봤나. 
A) 그때 선수들을 다 모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내가 다 책임을 질 테니 너희는 운동 열심히 하고 시합만 열심히 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 2군으로 내려갔다. 

Q) 사실 6월 6일 이후 김기태 감독님과의 면담 대화는 많은 분이 궁금해한다. 이제 다 끝난 일이고 김기태 감독님도 현장에 안 계시니 좀 더 자세히 공개해줄 수 있지 않을까. 
A) 감독님께서 내가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나랑 해보자는 거냐” 그러시더라. 그래서 내가 “감독님이랑 저랑 뭘 해봅니까. 감독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7회든, 8회든, 9회든 아무거나 제 역할을 정해주십시오. 그런데 아무 때나 나가라고 하시면 제가 어떤 장단에 맞추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김기태 감독님이 못 받아들이시는 것 같더라. 그러면서 감독님이 나한테 물어보시더라. “어떻게 해줄까? 방출을 시켜줄까? 트레이드를 시켜줄까?”라고 물어보시길래 “감독님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그것이 많은 분이 궁금해 하시는 6월 당시 김기태 감독님과의 면담 내용이다. 

Q) 그런데 돌연 2군에 다녀온 후 7월 10일 1군에 콜업되고 선발로 전환했다.  
A) 나는 그때 나를 1군에 불렀을 때 화가 풀리신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감독님이 화가 풀리셔서 나를 쓸 의향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려고 생각했다. 내가 아쉬운 것은 6월에 그렇게 나를 2군에 내려보내셨으면 그때 방출을 시켜주시든지, 트레이드를 시키든지 해주셨으면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무리만 했던 나를 갑자기 불러서 선발까지 써놓고 곧바로 방출을 시킨 것은 내가 생각했을 때는 '감정적인 보복'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그때 당시 내 심정으로는 선발을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나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름 최소한의 내 역할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방출이니까 내가 더 화가 난 것도 있다.  

Q) 선발투수는 임창용 선수가 원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사실인가.
A) 아니다. 사실 나는 그때 당시 2군에서도 운동을 전혀 안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는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트레이드되든 방출되든 구단에서 답이 오겠구나 싶었고 그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1군 복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안 맞으면 다행이다' 라는 생각으로 1군 경기에 나섰는데 운 좋게 잘 넘어갔다. 2경기 정도 불펜으로 뛰다가 갑자기 이대진 코치님이 오시더니 “너 선발 한 번 해볼래?”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시키면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다만 확실히 말씀드려야 할 것은 나는 선발을 원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캠프 때 선발을 원했지 준비도 하나도 안 되어 있었던 시즌 중에 선발을 원했었던 것이 아니다. 캠프 때야 “우리 팀  5선발이 구멍(?)이지 않습니까. 저의 나이도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만 올려주세요. 그러면 정말 잘할 자신 있습니다. 제가 5선발 할게요.”라고 웃으며 농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중간에 선발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사는 선발을 내가 원했다고 나오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 임창용은 보직 전환 뒤 12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 4패 평균자책 6.64를 기록했다. 초반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시안게임 휴식기 이후로는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5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팀의 확고한 선발로 자리 잡았다. 갑작스러운 선발전환치고는 호성적이다. 그리고 그는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1군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2018 시즌 임창용은 37경기에 등판해 5승 5패 4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 5.42를 기록했다. - 

 


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16년 위협 견제구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16년 8월 27일 임창용은 오재원을 향해 던진 위협 견제구로 인해서 많은 지탄을 받았다. 불법 도박사건의 징계를 받고 갓 복귀한 선수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날 임창용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임창용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임창용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만은 알아주길 바랐다. 그가 모든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 

 

 

임창용, 오재원 빈볼 사건의 진실 (출처 = KIA타이거즈)

 

 


Q) 2016년 8월 27일 두산베어스 오재원 선수에 대한 위협 견제구 때문에 임창용 선수가 많은 지탄을 받았다. 3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때의 진실도 말해줄 수 있지 않나. 
A) 이제는 시일이 많이 지났으니 이야기해도 되려나. 절대 오재원 선수를 맞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실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당시 팀의 룰이었기 때문이다. 팀의 룰이었기 때문에 오재원 선수에게 미안했고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팀의 룰로 정해진 것이 그날 경기 전전날이었다. "무관심 도루를 하면 견제를 하는 척해서 등이든 어디든 적당히 맞혀라” 라는 것이 룰이었고 그 전날 코치님께 한 번 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던지는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나온 것이다. 

전전날 정해진 룰이었기에 까먹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팀에서 정한 룰을 고참인 내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건 팀에 대한 항명이다. 거기다가 어린 선수들도 다 보고 있는데 최고참이 항명하면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계속 ‘어떻게 하지. 진짜 맞혀야 하나.’ 하고 마음속으로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그 위협 견제구였다. 문제가 커지자 그 다음 날 삭발을 하고 오신 감독님께서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시더라.  

Q) 임창용 선수도 잘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라도 사죄하면서 이 오해는 풀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 사건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지 않았나.   
A) 나는 그렇게 시시콜콜한 성격이 아니다. 방출된 것도 소위 창피한 일인데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내 성격과는 안 맞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3경기 출장정지에 120시간 사회봉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실을 말했거나 이행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빨리 방출되지 않았을까. 

Q) 작년 사건이 터졌을 때 이 이야기도 할 생각은 안 해보셨는가. 그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임창용 선수가 기아타이거즈를 위해 소위 총대를 멘 것은 어찌 되었건 사실이고 팀을 위해 희생을 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A) 나는 인터뷰를 못 하는 성격이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해와도 안 한다. 원래 그냥 막 뱉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막 이야기를 하는 성격이라 혹시라도 말실수하면 나만 손해를 보더라. 그래서 나는 삼성과 기아 시절에도 인터뷰를 다 거절했다. "나는 인터뷰를 절대 하지않으니까 시키지 말아 달라" 라고 구단에다가 요청해 놨다. 구단 직원을 통해서 정식으로 들어온 인터뷰만 했다.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인터뷰는 다 거절했다. 경기 MVP 같은 것도 나는 안 받아도 되니까 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 봐 무서워서였다. 


-  프로에서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러한 불문율을 수행하는 선수는 자신이 온갖 손가락질을 받을 것을 알면서, 그리고 동업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면서 소속 팀에 희생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불문율을 행하는 것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임창용 자신도 잘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한다. 떳떳한 행동이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임창용은 그러한 희생을 감수하기에는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가 군말 없이 이를 행한 것은 팀을 위한 희생 의지를 분명히 내비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5. 친정팀 기아타이거즈와 한국프로야구를 바라보는 베테랑 임창용의 시선

< 임창용은 드물게 한미일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 투수다. 그냥 경험한 것도 아니고 매우 잘했던 선수다. 평생을 마무리로 활약한 그이기에 생애 처음으로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프로야구는 또 다른 느낌일 듯했다. >  

 

 

(출처 = KIA타이거즈 제공)
임창용이 지켜본 현재의 기아는 어떤 모습일까? (출처 = KIA타이거즈)

 


Q) 평생을 불펜에서 살아오셨다.  최근 기아도 불펜에 문제가 많다. 기아 불펜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임창용 선수가 볼 때 아쉬운 점이 많을 것 같다. 
A) 과거에 이대진 코치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 불펜은 어린 선수들이 많다. 최고참으로서 아쉬웠던 부분은 우리 불펜들은 올라가서 주자를 내보내면 바로 바뀐다. 위기가 생기면 다른 투수가 나온다. 그러면 나오는 투수도 부담이고 내려가는 투수도 부담이다. 서로 부담이 된다. 기아에는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 분명 있다. 내가 봐도 '나보다 낫다.' 싶은 투수들이 많다. 그런데 왜 안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할 때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 정말 좋은 구위를 갖고 있는데 그 구위를 못 살려주는 것이 가장 큰 것 같다. '주자를 깔아놓으면 안 되는데~ 안타 하나 맞으면 바뀌는데' 뭐 이런 심리를 갖게 되니 소심해지고 계속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다. 불펜에서 보면 공이 좋은 투수들은 확실히 보인다. 구위가 되는 투수들이라는 판단이 섰다면 계속 책임감을 부여하고 믿어주면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배 양현종에 대한 임창용의 의견(출처 = KIA타이거즈)

 

 

Q) 후배인 양현종 선수가 최근 스스로 혹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서 팬들에게 꽤 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A) 혹사인지 아닌지는 본인만이 아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팬이나 주변 사람들은 혹사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200이닝을 몇 년이나 던졌고 내가 봐도 너무 많이 던진 것 같다. 현종이는 워낙 자존심이 강한 데다 던지는 것에서만큼은 욕심이 많다. 매년 200이닝씩 던지고 싶어 하고 방어율도 좋아지고 싶어 하는 등 야구에 대한 욕심이 많은 녀석이다. 

선배 된 입장에서 내가 볼 때는 쉬어갈 때는 쉬어갈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경험을 못 해본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감독이나 코치였다면 나는 강제적으로 현종이를 쉬게 했을 것 같다. 헥터 - 현종이가 20승씩 하면서 200이닝 이상씩 던졌고 우승을 했으면 나라면 이듬해에 6선발 체제로 돌렸을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만 쓴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200이닝을 안 던져도 되니 나갈 때만 확실하게 해주고 공백은 부담 없이 다른 애들을 키운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우승했으니 성적에 대한 부담도 가장 덜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리빌딩으로 갔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된다. 그것이 현종이도 살리고 팀도 살릴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임창용은 아직도 기아를 잊지않았다 (출처 = KIA타이거즈)

 

 

Q) 기아에서 최종 방출되었을 때 후배들이 아쉬워하지 않던가. 
A) 아쉬워하는 선배들도 있고 안타까워하는 후배들도 있었다. 기아 후배 중에서 주장인 주찬이, 형우나 범호 등이 많이 아쉬워하더라. 

Q) 한국 - 일본 - 미국을 모두 경험하셨다. 한국프로야구의 시스템적인 부분에서도 아쉬운 점이 분명 있을 것 같다. 
A) 나는 한국선수이기에 외국 이야기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외국의 시스템이 너무 좋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선발이 6인 로테이션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편하다. 요일마다 한 번씩이니까. 그리고 만약에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면 우리는 오늘 선발을 내일 선발로 바로 넣지만, 일본은 그렇지않다. 이틀 시간을 더 준다. 다음날 선발은 예정대로 나가고 그다음에 나가는 선수들까지도 자신의 루틴을 지킬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김광현이 선발 당시 우천 취소되면 내일 바로 또 나간다. 우리나라는 1선발을 하루 더 쉬게 하는 것이 아까운 것이다.

 

 


6.  임창용  "사회인으로서 부끄러운 것이 많지만, 경기장에서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임창용과 대화를 하면서 유독 가슴에 와 닿는 말은 1년이라는 짧은 한 단어였다. 그 1년을 더 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워 보였다. 구차하게 버티기 위한 1년이 아니다. 본인이 스스로  유니폼을 벗을 수 있는 정리를 위한 1년이었다. 그는 각종 구설수를 몰고 다닌 악동이 맞다. 지금 이렇게 쓸쓸하게 은퇴를 한 것은 그 대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이 어떠했던 그가 대한민국 역사가 기억하는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은퇴식도 없이 이렇게 선수생활을 마감했지만, 그는 꼭 한 가지만큼은 팬들이 알아주길 원했다. 인간 임창용은 부끄러웠지만, 투수 임창용은 그라운드 안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서 부끄럽지 않게 뛰어왔던 프로야구 선수였다는 것, 그 사실 말이다. > 

 

 

 

7월 11일 레전드매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임창용

 

 

Q) 솔직히 임창용 선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참 놀랍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죄송하지만 나는 임창용 선수를 혼자만 생각하고 혼자만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A) 야구를 할 때는 그렇게 한다. 다른 선수들에게 간섭을 안 한다. 내가 선수에게 터치하면 코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나는 선수이기 때문에 선수의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된다. 언론에서 고참이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나는 솔직히 그런 이야기들을 싫어한다. 나도 선수인데 선수들을 내가 왜 이끄나. 선수단을 이끄는 것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다. 물론 군기야 잡을 수 있고 팀 분위기야 조성할 수 있겠지만 똑같은 선수인데 누가 누구를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이것 하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후배들이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겠지.’ 라는 마음은 확실히 있다. 그래서 운동장에서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보여줬다고 자부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해라’ 보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몸 관리 노하우 등은 야구장에서 다 보여줬다. 생각이 있는 후배들은 그것을 보고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 아닌 후배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고 그런 것이 프로 아니겠는가.   

 

 

(출처 = KIA타이거즈 제공)
"사회인으로서 부끄러운 것이 많지만 그라운드에서 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출처 = KIA타이거즈)

 

 

Q) 임창용 선수가 워낙 할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이다 보니 안티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A) 내가 자존심도 있고 승부욕이 워낙 강하다 보니 야구장에서는 다소 강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지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정말 내성적인 성격이다. 숫기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안 한다. 지금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술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뿐이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어릴 때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도 말도 못 걸었었다. 다가오면 말을 했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Q) 그래도 수많은 오해를 풀고 진실을 밝히고자 이렇게 기자와 마주앉았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A) 솔직히 쉬고 있으니까 별의별 생각이 들더라. '내가 손해를 많이 봤네~ 많이 억울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부분들을 다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말해봐야 나한테 무슨 이득인가 싶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나는 상관이 없는데 내 아들들이 기사를 찾아보고 댓글을 찾아보고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댓글들이나 기사가 나오면 아들들한테 내가 해명을 해야 한다. 나는 밖에 나오면 보잘것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사회생활은 잘했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야구장에 있는 동안은 프로선수로서 부끄럽지 않게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 뒤 이어 사장시키기 아까운 임창용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묶어 지금까지 임창용의 24년 프로야구 인생을 정리하고 신인 시절부터의 선수생활을 회고해보는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추가 기고해볼까 합니다 > 

 

한국스포츠통신 전상일 기자(nintend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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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옹 2019-05-23 12:32:47
역시 양쪽말을 다 들어봐야한다. 충격적인 인터뷰다.
감독한테 본인 의견을 이야기 한것만으로 한 선수 인생의 마무리를 이렇게 망쳐놓다니..
지금이 쌍팔년도 아니고 감독 맘대로가 말이되는가

호돌이V12 2019-05-22 18:59:31
진짜 갑작스런 임창용 선수 방출은 선동열 감독님 시절때 갑작스러운 종범신 은퇴와 같은 충격 그자체였습니다....... 솔직히 임창용 선수가 백번 서운해 하실법도 하셨겠네요 ㅠㅠ 늦게나마 기아 구단측에서 은퇴식이라도 치뤄줬음 좋겠습니다!!

영감님 2019-05-22 15:50:14
영감님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네요..영감님..창용이나 기태나 다 아끼는 제잔데.. 마음이 어떠실지.

김현준 2019-05-22 12:57:57
기아구단 부터 감독부터 진짜 게 ㅆㄹㄱ 들...임창용 구위로만 봤을때는 중간에서 1~2이닝은 충분히 2년은 가능하다...기아는 선수 예우도 없고 존중도 없는 ㅆㄹㄱ 구단....

반성해라 2019-05-22 12:15:20
김기태 그렇게 물고 빨았던 기자들은 좀 반성해라.
작년에 아무 준비 없이 올렸던 김윤동 지금 어떻게 됐냐?
김기태 다신 야구판에서 안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