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신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생중계로 초연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생중계로 초연
  • 최유경 기자
  • 승인 2020.10.14 0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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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중계로 감상하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신작 초연
- 생존의 양면성과 인간관계의 가변성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남정호)은 예술감독 신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초연 현장을 온라인 생중계로 공개한다.

남정호 예술감독이 취임 후 처음 발표하는 신작으로, 사회 속 ‘생존’의 이면을 우화적·유희적으로 표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상황을 고려해 무관객 생중계를 통해 더 많은 관객이 공간의 제약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60분간, 관객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생존 게임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초반부는 무용수 14명(구은혜, 김건중, 김영란, 김용흠, 성창용, 알레산드로 나바로 바르베이토, 오진민, 윤명인, 이유진, 장경민, 전중근, 정서윤, 한지수, 홍지현)의 역동적인 군무로 채워지지만, 이어지는 다양한 장면에서 점차 생존에 실패한 ‘실종자’들이 발생한다. 살아남기 위해 변덕스러운 생존의 룰(rule)에 굴복하고 마는 개인,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이중성을 안무가는 직관적 연출로 표현했다. 함께 웃으며 춤추다가 단숨에 등을 돌려야 하는, 나의 생존을 위해 실종자를 외면하는 비극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씁쓸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연습 장면(출처 : 국립현대무용단)

 


유희적인 움직임과 잔혹한 내러티브의 ‘믹스 앤드 매치’

 

게임의 규칙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못하면 생존 대열에 합류할 수 없고, 생존자의 수는 점점 줄어만 간다. 살아남거나/실종되거나 둘 중 하나로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는, 다소 잔혹한 이야기 흐름이다. 그러나 움직임은 상당히 유희적이다. 가벼운 왈츠 형태의 춤이 등장하기도, 자유로운 현대무용의 에너지가 가감 없이 표출되기도 한다. 남정호 예술감독은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안무가 인터뷰에서 “닥쳐올 위기나 불안을 느끼지만, 그것을 외면하고자 유희가 주는 쾌락에 더 몰두하는 상황이 교차한다*”고 설명했다. 움직임의 유희성과 잔혹한 서사의 교차가 각각의 성격을 더욱 부각하도록 하는 연출 의도다. 즐거운 무대 위에서 낯선 긴장을 느끼는 순간, 내면을 꿰뚫어 보는 작품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춤을 추는 한 사람. 그를 스쳐 가는 한 무리의 폭력적 행위.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서막은 이렇게 열린다. 한정된 생존의 자리를 위해 가해를 선택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쟁의 굴레. 단편 연작처럼 뒤를 잇는 장면들은 일종의 우화가 되어 관객을 끌어들인다. 장면들의 초대에 응하다 보면, 모르는 새에 무대를 관통해 인생의 단면을 관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포스터 촬영 현장(출처 :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포스터 촬영 현장(출처 :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유희’는 오래전부터 춤과 삶의 유희성에 탐닉한 남정호 예술감독 안무관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몸의 자연성에 귀를 기울이고, 진중함과 위트로 화두를 던지는 남정호 예술감독이 날카로운 시각에 연륜을 더해 삶을 통찰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무대 위에서는 유년 시절 한 번쯤 경험해볼 법한 놀이들이 펼쳐진다. 효율적인 노동이 아닌, 놀이의 즐거움을 향한 순수한 몸짓. 즐거운 분위기와 자연스레 떠오르는 어린 날의 향수에 취해 웃음을 드리운 당신에게 안무가는 제안한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당신의 뒤로 지나간 ‘존재의 삭제 현장’을 본 적 있냐고. ‘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적, 배타적 속성. 그리고 웃음 뒤에 어처구니없이 내동댕이쳐진 이들도 응시하길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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