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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상대에 꽃다발 전달하고 박수 쳐준 대구고, 그들이 보여준 패자의 품격
[기자의 눈] 상대에 꽃다발 전달하고 박수 쳐준 대구고, 그들이 보여준 패자의 품격
  • 전상일 기자
  • 승인 2021.06.15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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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보다 준우승이 더 싫다. 패하고 상대의 헹가레를 보는 것은 곤욕이다.” 

아마 결승에서 패한 모든 감독의 본심일 것이다. 
패배를 달가워하는 감독은 없다. 하물며 우승을 목전에 두고 패하면 아픔은 배가된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이라는 후회가 남는 것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앞을 가려 승자를 축하해줄 여유는 갖기 힘들다. 실제로 이번대회 맹활약한 대구고 이재용(3학년)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승자 또한 패자에게 그런 여유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경기에 패한 후 눈물을 흘리는 대구고 이재용(사진 : 전상일)

 

하지만 최근 그런 경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작년 협회장기 당시 세광고가 그랬다. 이날 대구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와 꼭 닮아있었다. 약속의 9회. 2-13으로 크게 벌어져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대구고 선수들은 더욱 크게 소리 지르며 경기를 즐겼다. 모 관계자는 “이제 경기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구고가 우승한 줄 알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3학년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기에 출장한 적이 없던 엄준성(3학년)이 0.1 이닝을 막고 들어오자 대구고 선수들 모두가 그의 머리를 두드리며 축하해주었다. 내년에 이로운, 김정운 등과 함께 주축으로 활약하게 될 장준혁(2학년) 또한 2피안타 2사사구 2실점 했지만 143km/h의 스피드를 과시하며 만족스러워 했다. 

압권은 경기가 끝나는 순간. 이재용의 병살타로 강릉고의 우승이 최종 결정되자 대구고 선수들은 모두 뛰어나와 강릉고 선수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전했다. 우승 팀 선수들이 세레머니를 할 때도 눈살을 찌푸리는 선수도 없었다. 

 

 

최재호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손경호 감독 (사진 : 전상일)

 

선수들의 매너에 대구고 손경호 감독도 화답했다. 본인들의 우승 위해 준비했을 큼지막한 꽃다발을 승자에게 양보했다. 손 감독은 시상식에서 강릉고 최재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할 때 한쪽 편에 서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꽃다발을 전했다. 최근 몇 년간 상대 팀이 꽃다발을 준비한 것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이긴 팀이 모두 갖는다. 토너먼트는 더욱 그렇다. 언제 또 이 자리에 설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갈무리하고 상대를 향해 보여준 행동은 본인들의 준우승 가치를 더욱 올리는 행위 다름 아니었다. 

 

"모두 수고했어" 손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선수들 (사진 : 전상일)

 

대구고는 2018년~ 2019년 무려 3개의 전국대회 우승컵(2018 대통령배, 2018 봉황대기, 2019 대통령배)과 1개의 준우승컵(2018 황금사자기)을 거머쥐며 한 시대를 풍미한 명문고다.  

선수들은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전국대회 결승전이라고. 진짜 강한 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패자의 품격'이라고.

 

전상일 기자(nintend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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