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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심지가 준비되면 당장 불을 붙여라’장애인의날 사상 최초 ‘장애인국제음악회’ 개최!!
‘상상 심지가 준비되면 당장 불을 붙여라’장애인의날 사상 최초 ‘장애인국제음악회’ 개최!!
  • 한국스포츠통신=김종섭기자
  • 승인 2021.10.2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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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구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의 ‘상상 실천법’
휠체어를 탄 지휘자 차인홍 교수

(한국스포츠통신=김종섭기자) 인생이란 결국 본인이 생각한 대로 펼쳐진다고 했다. 무엇인가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한다’는 한 가지 이유면 충분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을 때는 99가지 이유를 꼽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동의하는 말이다.
좋은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연습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필요 없다. 청중을 감동시키겠다는 목적만 잃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연습하기 싫을 때는 ‘시간이 부족해서’, ‘학생 가르치느라’, ‘집안 청소를 하느라’ 등 숱한 이유가 생각의 징검다리를 둥둥 뛰어다닌다. 마치 안네 카레니나 법칙의 불행의 법칙과 비견되는 습성이다.
얼마 전 한 장애인음악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음악인들은 그동안 연습을 게을리할 때마다 핑계를 댔던 숱한 이유들이 사고 난 터널 속 연기처럼 공연 내내 부유했다. 그 불편한 몸, 아니 앞을 볼 수 없는 피아니스트가 사금파리를 피하려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무대에 입장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로 파랑의 음파를 펼치는가 하면, 역시 시작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단결 같은 선율로 선보였다.
어디 이뿐인가? 장애인 테너는 최고의 음색으로 청중에게 고향의 노스탤지어로 빠져들게 했다.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합류한 장애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휘자는 휠체어에 앉아 지휘봉으로 지극히 아름다운 선율을 실 잣듯 뽑아냈다. 온몸이 뜨거웠다. 눈시울은 촉촉해지고 세속의 정글을 빠져나와 탁 트인 평안의 바다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으로 감동이 일렁였다.
“불편한 몸,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저토록 행복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요? 감동을 넘어 크게 반성했습니다.”
소프라노 최 모 교수는 이번 공연을 주최한 한국음악협회 이철구 이사장에게 귀띔으로 고백했다.

지난 10월 11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제38회 대한민국국제음악제 중 UN 세계장애인의 날 선포 제40주년 기념 장애인국제음악회가 열락의 향연처럼 펼쳐졌다. 대한민국국제음악제(조직위원장 이철구)는 11일 외에도 16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코로나종식 기원음악회’(바이올린 제니퍼 고 지휘 최희준 수원시향 연주)를 별도로 개최했다.
‘장애인국제음악회’는 한국음악협회가 세계 최초로 창단한 ‘세계장애인연합오케스트라’의 연주 아래 차인홍이 지휘를 맡아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 연주를 시작으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 1악장(피아노 이재혁), 현제명의 ‘고향생각’(테너 최승원), 칠레아의 오페라 아를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테너 최승원), 엘가의 수수께끼에 의한 변주곡 제9번 ‘님로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바이올린 김종훈) 등 시간이 흐를수록 차오르는 벅찬 클라이막스를 연출해냈다.
사실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감동은 물결쳤다. 정확히는 시작장애인 협연자가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잡을 때부터였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는 첫 음의 위치를 찾느라 손의 감각을 돋우고 소리내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건반의 첫 음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그 전율은 청중의 심장으로 온전히 전이되었다.
“뭉클했습니다. 어느 건반을 연주해야 할지, 열쇠를 찾는 라보엠의 미미처럼 더듬는 모습에서 울컥했다니까요. 바이올린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저 긴 곡을 암보해서 연주하는지 그저 감동이었죠. 비장애인들이 연주를 잘하면 마땅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악보를 보지 못하는 분들이 훌륭한 연주를 펼칠 때는 위대한 순간으로 와닿습니다.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그들이 연주한 작품은 청각장애인 베토벤의 작품 아니겠어요?”

이날 청중은 전석 매진이었다. 장애인 지정석 14개의 좌석이 부족해 28개까지 늘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된 것은 연주자뿐만이 아니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너무도 좁았던 장애인들은 그동안 문화예술에 대한 가뭄을 한꺼번에 해갈하려는 듯 쏟아지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다.
유엔이 ‘장애인의 날’을 선포한 지 무려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 부응하기 위한 음악회가 그동안 존재하기나 했을까? 놀랍게도 전무하다는 게 한국음악협회 이철구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 점이 바로 이철구 이사장이 40주년을 기념해 대한민국국제음악제에 장애인국제음악회를 별도로 추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올림픽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패럴림픽을 두고 있죠. 국제음악제에도 장애인국제음악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올해 중국상하이필의 내한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예산 확보가 가능했습니다. 이를 씨 자본으로 삼아 장애인국제음악회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후원단체들을 두루 찾아다녔죠.”
12월 3일은 바로 유엔이 선포한 ‘장애인의 날’이다. 이철구 이사장은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과 상의해 이번 음악회를 12월 3일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유튜브와 웹에 실어 전격 공개할 예정이란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 보자. 사실 ‘대한민국국제음악제’는 흥행을 목적으로 개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워낙 뛰어난 연주자들이 함께 하기에 매년 청중들의 관심과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국제음악회 역시 흥행이나 수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음악회다. 그럼에도 이철구 이사장은 장애인음악회를 구상하자마자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제가 jtbc 방송에서도 밝혔던 내용입니다. 왜 우리가 인기 여부와 관계없이 이런 행사를 개최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은 수익 창출이나 인기를 목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영방송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해야 해요. 한국음악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예산을 받아서 하는 행사라면 인기와 관계없이 꼭 해야 할 공연을 펼쳐야 합니다. 수익이 보장되는 공연은 민간 기획사 등 사기업이 해야 하지만 한국음악협회는 보다 공적인 행사를 개최해야 하죠. 그래서 우리가 치러야 할 대표적인 장르로 국악과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를 꼽습니다.”

이철구 이사장

이철구 이사장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아예 ‘세계장애인연합오케스트라’도 결성, 장기적으로 매년 장애인국제음악회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이번 창단 연주에는 전체 단원 중 불과 5명의 장애인들만 참여했습니다. 앞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장애인들이 우리 오케스트라에 두루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열 계획입니다. 해외 공연일 경우 그 나라의 장애인들이 단원으로 합류할 수 있도록 꾸준히 홍보할 계획이고요. 일본에는 굉장히 유명한 장애인 클라리넷 주자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에는 그런 분들이 합류하고, 홍콩과 호주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에 걸쳐 기금확보도 가능하고, 그 기금을 토대로 한다면 장애인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운동이 바로 유엔 제정 ‘장애인의 날’에 걸맞은 문화예술 활동입니다.”

한편 이번 국제장애인음악회를 두고 장애인단체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음악협회가 나섰기 때문에 장애인국제음악회가 가능하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국제음악회 공연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김예지 국회의원 역시 ‘장애인단체가 할 일을 한국음악협회가 대신 치러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안중원 이사장님 역시 너무도 뜻깊은 행사였다고 호평해주었습니다. 내년에는 예산도 고려해서 함께 하겠다고 하셨고요.”
이철구 이사장은 방향 설정의 탁월한 귀재라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방향과 목적이 설정되면 ‘선실행’, 즉 먼저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지만 아무도 후원하지 않는 기획이라면 그 기획은 그저 ‘몽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이사장이 나서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렇다고 지원단체에 투자해달라고 먼저 읍소하지 않는다. 협회의 적은 예산으로라도 일단 음악회든 행사든 우선 일을 벌인다. ‘와서 한번 보시라’고 권유할 뿐이다.
“어떤 기획이든지 실제 공연을 펼쳐 보여야 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돈 주면 하겠다는 것은 결국 돈 없이는 안 하겠다는 뜻이잖아요. 한국음악협회는 이런 식으로 행사를 추진하지 않습니다. 왜 그 행사가 유의미한 것인지 먼저 보여주거든요.”
그 대표적인 행사로 인천시와의 협업을 들 수 있다. 인천시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개최되는 ‘한중국제합창제’가 바로 그 행사다. 지난 2018년 한국음악협회는 불과 4천만 원의 후원으로 참가자와 가족 등 도합 2천여 명이 참가하는 국제합창제를 인천시에서 펼쳤다. 그런데 그 행사로 인해 인천시는 무려 50억 원의 흑자를 거머쥐었다. 사실 50억 원이 흑자라는 계산을 했다면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했겠지만 행사의 수익이 불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4천만 원만 후원했던 것.
“당시 4천만 원 후원을 받았지만 실제 진행비만 7천만원 이상이 소요되었죠. 약 3천만 원 적자 행사였지만 이듬해 전해보다 다섯 배 이상 후원받아 아주 훌륭하게 행사를 치렀죠. 이처럼 공공이 해야 할 일을 하면 오히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 기획행사의 성공 이후 인천시는 동아시아 국제축제 등 여러 행사를 한국음악협회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번 장애인국제음악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따라 결과적으로 많은 예술단체와 장애인단체들이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이철구 이사장은 이를 계기로 내년에는 세계적인 장애인 연주자들도 두루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내년에는 한중수교 30주년이기에 장애인국제음악회도 올해보다 훨씬 규모있는 국제행사로 확장될 것으로 내다봤다.
“2021년 행사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다섯 개의 큰 행사가 남았습니다. 이달 30일은 박범훈 선생님의 지휘로 국악관현악축제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립니다. 국악 행사로서는 가장 큰 축제죠. 11월 26일은 문화재청과 함께 열린음악회 형식의 덕수궁음악회가 시민들을 흥겨움의 세계로 이끌 거고요. 소프라노 신영옥 등 시민들에게 친근한 출연자들이 함께 할 겁니다.”

또 11월 19일과 20일에는 KBS정기연주회의 일환으로 ‘동아시아음악축제’가 열리고, 그 이전 11월 11일에는 중국 사천성 방문의 해를 기념하는 사천성음악회가 열린다. 당초 사천성교향악단이 내한해야 하지만 코로나로 내한이 어렵게 되자 중앙국악관현악단이 대신 연주를 맡게 됐다.
“동아시아음악축제는 단순히 연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세미나를 통해 석학들이 각자의 논문을 발표, 그 내용을 책자로 만들어서 널리 보급합니다. 예컨대 한국에서 바라본 중국음악, 중국에서 바라본 한국음악 등 교류의 의미를 담은 동아시아 음악관련 석학들이 논문들입니다. 올해 세미나는 비대면 화상 회의로 진행되지만 그 내용을 논문집을 발간할 계획입니다.”
2021년 피날레 축제는 12월 대한민국작곡상연주회. 12월 8일 국립국악원과 함께 개최되는 작곡상연주회 역시 국립국악원 세미나도 병행한다.
“어떤 축제든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하려면 반드시 세미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사가 문서로 남게 되어 이 문서를 근거로 해마다 일신할 수 있거든요. 이 역시 논문집을 별도로 출간합니다. 주제 발표자는 100쪽 이상의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래야 역사가 전수됩니다. 예컨대 이번 주제는 ‘전통악기의 표기법’입니다. 지금까지의 국악관현악 표기법이 서양음악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데 과연 그 방법이 능사인가, 올바른 것인가를 반성해보자는 것이죠. 박범훈, 전인평, 이종구, 임준희 등 작곡가 지휘자 및 이론학자들이 나와서 발제하고 토론합니다. 무엇이든 논쟁의 여지가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정립해 나가자는 게 저희 취지입니다.”

리더는 누구나 맡을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희망을 주기만 해도, 씨앗을 뿌리기만 해도 안 된다. 뿌린 씨앗에 거름을 주고 물대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음악협회 이철구 이사장이 음악계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분들이 그보다 더 좋은 음악계 부양방법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천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기에 이철구 이사장이 장애인을 위해, 국악계를 위해, 음악인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 대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음악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모든 게 성공적으로 치러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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