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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때문에 출전 포기' '당일 지방 왕복' 비상식적 행정에 아마야구 쓰러진다 [전상일의 온더스팟]
'출석때문에 출전 포기' '당일 지방 왕복' 비상식적 행정에 아마야구 쓰러진다 [전상일의 온더스팟]
  • 전상일 기자
  • 승인 2022.06.15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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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초등 5일, 중등 12일, 고등 25일로 ‘출석 인정 결석 일수’ 대폭 줄어
- 초등학교, 중학교는 전국대회 참가 포기 속출
- 팀이 많지 않은 지방 초‧중학교의 피해가 특히 커
- 출석일수 맞추기 위해 지방 당일 왕복, 연습경기는 주말에.. 선수들 부상 위험도 되려 늘어
- "무엇을 위한 출석 인정 일수 제한인지 알 수 없다" 현장 감독들 강력 성토

“출석 일수 때문에 남은 전국 대회 참가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광주 화정초 유종열 감독의 하소연이다. 화정초는 얼마 전 천안 흥타령기를 우승한 광주 최고의 명문초다. 문동주(한화이글스)와 윤도현(기아 타이거즈) 등이 모두 화정초를 나왔다. 광주 야구의 산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 우승 영광을 끝으로 아예 시즌을 접게 될 전망이다. ‘출석 인정 일수’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학교와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화정초 선수들

 

 

왼쪽이 문동주, 오른쪽이 윤도현의 초등학교 시절 사진

 

모든 초등 팀이 참가하는 최고 권위 대회인 U-12도 참가를 포기했다. U-12대회의 일정은 7월 22일. 하지만 광주는 7월 말에 방학이 시작되어 '출석 인정일수'를 맞출 방법이 없다. 

유 감독은 “초등학교라서 대회 실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수는 시합을 해야 기량이 향상된다. 매일 펑고만 받고 있으면 실력이 향상 될 수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대략 5개 정도의 전국대회가 있는데 초등학교는 1개, 중학교는 2개 대회 참가가 한계다. 초등학교가 가장 피해가 막심하다. 선수들과 학부모님들이 모두 아쉬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재작년까지의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당시는 초등학교 10일, 중학교 15일, 고등학교 30일이었다. 모 지방 명문 고교 감독은 “전국대회는 전부 서울에서 펼쳐진다. 우리는 비가 와서 경기가 순연되면 호텔에서 전원 대기해야 한다. 출석일수가 그냥 빠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전력이 약한 팀은 좀 사정이 낫지만, 경남고나 북일고 같이 매 대회 우승을 노리는 명문고들은 빠듯 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고교는 사정이 많이 나은 편이다. 작년부터 초등학교는 5일, 중학교는 12일로 대폭 줄어버렸다. 특히, 초등학교는 반토막이 났다. 초등학교 5일, 중학교 12일은 외부 대회에 참가하지 말라는 말과 진배없다. 초등학교는 딱 1개 대회. 중학교는 빠듯하게 운영한다는 전제하에 2개 대회 정도 참가가 가능하다. 중학교도 행여 운이 좋아 결승이라도 가게 되면 대회 하나로 시즌이 끝날 수도 있다. 특히, 팀 수가 적은 지방 학교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외부로 나가지 않으면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인정출석일수는 초등학교 5일, 중학교 12일... 비정상적으로 적다

 

그래서 각 학교들은 '출석 인정 결석 일수'를 맞추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 중이다. 광주 충장중 나길남 감독은 “아예 반으로 나눠서 어떤 대회는 3학년만, 어떤 대회는 2학년만 데려가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라고 고심을 토로하기도 했다. 기량이 아닌 출석일수 때문에 선수를 반으로 나눠 참가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학교는 최대한 인정 결석 일수를 아끼기 위해 당일로 3시간 거리의 대회장을 왕복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아껴야 한 경기라도 더 할 수 있다. 선수들의 피로도는 엄청나게 쌓일 수밖에 없다. 다음날 학습, 훈련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출석일수 때문에 더 이상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니 저학년들을 기용해 고의로 패하는 경우도 있다. 연습경기는 주말에 몰아서 할 수밖에 없다. 휴식권 보장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 

 

 

작년 경주에서 펼쳐진 중학야구선수권 사진
현재 경주에서는 중학야구선수권이 펼쳐지고 있다(사진은 2년전 대회)

 

최근 아마야구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가 높다. 
수도권 모 프로구단 스카우트 팀장은 “현재는 그래도 베이징세대라서 고교 선수의 수준이 높다. 하지만 앞으로 아마야구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일단, 선수 숫자 자체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다, 훈련량이 엘리트 선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다. 대학야구는 클럽화 되어가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면 야구를 그만둘 생각부터 하는 선수도 많다. 연습경기 중 가방 싸들고 수업들으러 나간다. 고교도 수업을 모두 마치고 오후 4시쯤 운동장에 나와서 2~3시간 정도 훈련하는 정도로는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국에 라이트와 운동장 시설이 완비된 학교가 몇 개나 되는가. 결국, 부족한 훈련량을 레슨장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님들의 부담도 가중되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라고 우려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경주에서 중학야구선수권이 한창이다. 130여개 팀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대회다. 하지만 현재 각 학교 감독들은 상대팀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탁상행정에 입각한 출석일수 맞추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경주대회에 참가 중인 익명을 요구한 모 중학교 감독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야구를 직업으로 하려는 선수들이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시험 보러 가지 말고 수업만 듣고 졸업하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현재 이들은 수업을 모두 듣고 훈련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마저 제한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럴거면 대회는 왜 개최 하는 것이며, 이 비상식적인 출석일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교육계와 아마야구계가 반드시 경청해야 할 현장의 목소리다. 


전상일 기자(nintend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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