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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성녀 “나는 살아있는 무대 위의 전사 … 창극 생존 위해 몸부림 칠 것”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성녀 “나는 살아있는 무대 위의 전사 … 창극 생존 위해 몸부림 칠 것”
  • 전상일 기자
  • 승인 2018.07.13 0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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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상태 창극에 새로운 숨결 불어넣어... 얼마전엔 유럽3개국 투어 성공적 마무리

대한민국 창극 사(史)는 김 감독 전과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3월 국립창극단에 부임한 김성녀 예술 감독은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있던 대한민국 창극에 회생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창극은 변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함께 과감한 시도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이었다. 한태숙이 연출한 이 작품은 '샤워 신'을 등장시켜 시작부터 객석에 충격을 안겼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사상 첫 18금 창극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시도에 의문부호를 품었다. 창극을 망친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았으나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성녀

 

시간이 지나자 김 감독의 뚝심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전 창극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발을 돌리는 경우도 있긴했으나 관객층이 다양해졌다. 젊은이들이 창극을 보기 시작했고, 뮤지컬, 연극 마니아들을 흡수하며 매진 사례를 이어갔으며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회전문 관객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 감독의 방에는 어느덧 매진봉투가 수북이 쌓여갔다.

그녀는 전승의 가치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창극은 판소리라는 ‘전통문화’에서 파생되어 그 시대에 맞게 전승되어야 하는 공연예술이라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미학적 가치가 빼어난 우리 창극을 현재로가져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뼈를 깎는 성찰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성찰적 현대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창극의 미래가 열린다는 것이 평생을 무대에 위에서 살아온 그녀의 소신이다.

 

1. 유럽 3개국 투어

김성녀 감독은 얼마 전 '트로이의 여인들'로 유럽 3개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창극은 영국 런던(2~3일)ㆍ네덜란드 암스테르담(8~10일)ㆍ오스트리아 빈(16~18일) 등 이름난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현지 관객과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김 감독은 이번 투어를 통해 “새로운 창극의 시대가 열렸다” 라는 과감한 표현을 썼다. 우리네 창극이 유럽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는 것을 전석매진·전석기립이라는 성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빈페스티벌 트로이의 여인들 공연장면

 

Q) 먼저 유럽 3개국 투어 잘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잘 들었다. 먼저 소감 한마디 부탁드린다.

음악과 예술의 성지라고 하는 유럽의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쪽에 유명한 페스티벌의 오프닝작·폐막작이라는 큰 대접을 받고 다녀온 것 자체가 매우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전석매진, 전석기립이라는 굉장히 큰 업적을 세우고 오니 ‘이제 창극의 시대가 열릴 수 도 있겠다’ 는 느낌이 들었다.

 

Q) 도전 자체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창극은 역사가 100여 년 됐지만 아직 창극을 한 번도 못 보신 국민들이 많다.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 창극이 문화예술의 중심지라고하는 유럽에서 각광을 받는 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전통은 서양 문물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세월의 한 구석에서 골동품처럼 치부되는 우리의 전통 예술이 현대화의 옷을 입고 동시대적인 예술로 다시 태어난 것이 희망적이다.

 

트로이의 여인들

 

Q) 이번에 유럽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전략 포인트가 있었을 것 같다.

우리가 공략했던 것은 세계인이 공감하는 이야기에다가 판소리를 넣어 극화를 하면 이 사람들이 훨씬 더 공감대가 크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전쟁에 피해를 보는 여인들의 시각은 어느 나라든지 다 마찬가지다.  ‘트로이의 여인들’이라는 소재에 우리 소리를 얹어서 해외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오늘의 동시대적인 이야기로 만든 것이 적중했다고 보고 있다. 관객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을 더 앞질러갔다. 창극을 보며 전쟁에서 고통 받았던 한국민들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위안부 문제까지도 결부시켜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관객들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본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Q) 창극이 외국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엇이 있을까.

 ‘판소리’다. 판소리는 서양의 클래식 발성이나 기타 소리보다 독특하고 한국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독창적인 발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소리, 거친 소리 심지어는 귀신소리 등 다양한 자연의 소리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 판소리다. 그곳에 경쟁력이 있다. 맨처음에는 쉰 듯 한 목소리로 걸걸하게 나오니까 ‘저게 뭐지?’ 하던 사람들이 그 걸걸함과 절절함과 격렬함이 주는 폭풍 같은 에너지에 나중에는 '감상'이 아니라 '감동'으로 가는 과정을 객석에서 계속 같이 지켜보았다.

 

Q) 향후 투어계획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가보지 못한 유명한 축제에서 우리를 초청하겠다는 프러포즈가 계속 오고 있다. 의사를 밝힌 것만 10개정도가 된다. 우리는 유럽 쪽은 파리로 다녀왔고 이번에도 다녀왔기 때문에 미국 쪽으로 진출을 해볼까 하는 계획을 잡고 있다. 또한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지 못한 아시아가 남아있다.

 

Q) 국가적으로는 창극에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는가.

현재 국립이라는 보호아래 단원들의 월급을 지원해주고 1년에 몇 편씩 공연을 하는 제작비를 지원해준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내가 보기에는 열악한 환경이다. 여기에서 독립된 오페라나 발레단의 예산보다도 훨씬 적은 예산으로 우리는 몸부림 치고 있는 중이다. 단원들이 해외투어를 하려면 단원보강을 해야 하는데 30~40명도 안 되는 단원가지고 이 모든 것을 해내기가 버겁다. 외국에서는 무대를 바꾸는데에만 60명이 넘는 스텝이 투입 되더라.

 

2.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 김성녀

“나는 살아있는 무대 위의 전사다. 무대 위에서 50년의 평생의 시간을 보내왔다. 내가 시도한 일련의 파격은 나의 무대 경험을 녹여낸 결과물이다. 창극은 계승이 아닌 전승을 해야 하는 장르다. 이 시대에 맞는 무대예술로 발전하기 위해서 창극과 판소리는 이원화되어야 한다”

 

"창극은 계승이 아닌 전승을 해야하는 장르"

 

Q) 예술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하셨다.

처음 3년은 기존 시스템과의 마찰을 통해서 이곳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을 해서 파격을 시도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스릴러창극 장화홍련을 시작하면서 ‘창극을 망치는 사람’ 이라는 욕도 먹었다. 옛날 창극이 갖고 있는 향수를 그리워해서 지방에서 올라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공연 중에 나가기도 하셨다. 하지만 관객이나 매스컴에서 제 창극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셔서 관객들의 힘으로 또 실험을 할 수 있었고 또 새로운 작품으로 도전할 수 있었다. 그 도전의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다.

 

Q) 관객층이 많이 변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관객의 층이 굉장히 젊어지고 싹 바뀌었던 것 같다. 젊고 다양한 관객들이 그때부터 모이기 시작했고, 초청이 아닌 직접 표를 사서 관람하는 팬들이 오기 시작했고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창극배우 중에서 연예인처럼 팬들을 거느리는 인기 배우가 배출 되었고 회전문 관객처럼 7~8번 보는 충성도 높은 관객들의 숫자가 늘었다.

 

김성녀 감독의 새로운 시도 - 스릴러창극 장화홍련

 

Q) 감독님의 새로운 시도는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딜레마에 빠질 여지가 많다고 보여 진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발전시키실 생각인가.

전통이라는 것은 옛것을 그대로 지켜가는 것을 말한다. 판소리에서 파생된 창극은 전승의 개념이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것, 그 시대에 필요한 문화예술로 자리 잡는 것이 전승이다. 판소리는 전통을 고수해야하고 창극은 전승을 해야 하는 장르다. 그것을 이해 못하면 창극을 마치 전통으로 생각한다. 만약 창극이 옛것만을 계속 고수한다면 누가 창극을 보러오겠는가. 그냥 제대로 된 판소리를 듣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창극을 이 시대에 맞는 무대예술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창극과 판소리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이원화되어야 한다.

 

Q) 이런 부분을 이해시키는데 힘들지 않았나.

나는 연극 생활을 60년 가까이 했다. 5살 때부터 무대에 섰다. 나는 살아있는 무대 예술의 전사다. 나는 직접 전쟁에 참가하는 사람이지 이론을 고민하는 장교가 아니다. 무대 위의 감각으로 우리 것은 어때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치열하게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무대에서 예술 감독으로서 해야 할 공부를 현장에서 미리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이런 공부를 미리 하지 않았다면 이런 파격적인 실험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창극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도 이 방향으로 가보자는 확신을 갖고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다. 물론 내 시도가 전부 옳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이 응원해주고 세계에서도 반응이 오기 때문에 ‘잘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웃음).

 

Q) 남은 임기동안 예술 감독으로서의 목표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예술 감독은 할 일이 없다. 3년씩 해서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구조를 파악하고 뭘 해보려고 하면 3년이 끝난다. 최소한 성과가 나타나려면 10년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제 6년을 했고 1년이 연장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의 연속성을 가지고 관객들이 우리의 다음창극을 궁금해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일례로 6년의 마지막 작품으로 심청가를 했다. 심청가야 말로 판소리 자체를 극에다 올려서 정말 미니멀 한 무대와 현대적인 소리의 한바탕을 거 진 담아냈다. 심청가는 4시간 30분이다. 그런데 2시간 정도로 잘라서 기존의 창극에서는 듣지 못했던 소리의 퀄리티가 우수한 창극을 해보자는 의도로 만들었는데 11번의 공연이 전부 매진이 되었다. 사람들은 심청가가 창극의 정점을 찍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미 심청가도 옛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3. 배우 김성녀

“인기는 뜬구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 감독의 임기가 끝나면 본연의 자리인 무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알아주는 혹은 내가 나를 인정하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은 것이 나의 마지막 목표이자 소망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Q) 대중들에게 배우 김성녀를 소개하고 싶다. TV나 영화 쪽에 기억나는 작품들이 있으시면 소개 좀 부탁드린다.

나는 30대에 TV를 많이 했다. 당시에는 연극만 가지고는 수입이 적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당시 전원일기의 금동이 생모로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TV를 시작했다. 또한 일월이라는 드라마를 했었고 서울뚝배기에서는 오지명씨와 결혼하는 푼수 동생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드라마 토지에서는 악역을 소화하기도 했었다. TV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도 내가 했던 드라마들이 거의 다 잘 돼서 그때 나를 봤던 사람들은 나를 탤런트로 알고 있다.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월매 역할을 했었고 변승욱 감독의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이라는 작품을 했었다. 춘향뎐에서는 여우조연상도 받았다. 그리고 아직 개봉을 안 한 이수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가 하나 더 있다. 지금생각해보면 나는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창극 등 안 해본 장르가 없는 것 같다(웃음).

 

Q) ‘마당놀이’의 대모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마당놀이를 대중들이 알기 쉽게 설명을 부탁드린다.

우리 한국연극의 원형이 전통연희다. 판소리도 있고 굿도 있고 탈춤도 있는 소리의 원형이기도 하고 춤의 원형이기도 하다. 서양연극은 화술만 하는 연극인데 반해 한국의 연극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화술을 하는 것이 원형이다. 마당놀이는 한국적인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전통연희가 우리 연극의 원형이었고, 극장은 ‘프로세늄아치’ 처럼 3면이 막혀있는 극장은 서양형 극장이고 우리의 극장은 마당이라는 착안에서 나왔다. 마당을 극장으로 놓고 몸짓은 우리의 몸짓, 우리의 소리, 우리의 정서를 가지고 현대화 시킨 것이 바로 마당놀이다.

 

 

Q) 공연예술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감독님께서는 최근 문화예술계에 불어 닥치고 있는 ‘미투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연극계 사람들이 자유롭다 보니까 말이 많이 터져 나왔다 뿐이지 쉬쉬하는 장르는 아직도 많이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부분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소위 말하는 갑질 문화 에서 파생된 것도 있다. 이런 병폐들이 겹겹이 쌓여있다가 터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미투가 너무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로 가면서 잘 못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우려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사람에 대한 배려, 애정이 제대로만 간다면 이번 사건을 통해서 조금은 더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Q) 마지막 질문이다. 김성녀의 인생의 목표는 90살까지 연기하는 것 이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결국 돌아갈 곳은 무대라는 의미 같다. 배우 김성녀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도 인기가 많았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많이 없어졌다. 그것이 나를 깨우치게 한 면이 있다. 인기는 뜬구름 같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제는 인기를 떠나서 좋은 연기가 무엇일까 고민해봐야 시기인것 같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아주는 혹은 내가 나를 인정하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은 것이 나의 목표이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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