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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100명과 함께 아시아 현대미술을 다시 쓰다
작가 100명과 함께 아시아 현대미술을 다시 쓰다
  • 한국스포츠통신
  • 승인 2019.01.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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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오탕, 판차오, 젤라틴 실버 프린트, 36×36cm, 1962(작가 소장)

 살짝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선 남자의 뒤편으로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머리가 없다는 사실이 주는 섬뜩함은 흑백 사진 전체를 뒤덮은 몽롱한 기운에 묻힌다. 대만의 손꼽히는 사진작가 장자오탕(張照堂)이 19살 때인 1962년 촬영한 '판차오'는 젊은이가 느끼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후에도 고향 판차오 곳곳을 돌며 비닐로 씌운 얼굴, 양손으로 압박된 얼굴 등을 촬영했다. 당시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대만 사회를 억압·통제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사진은 젊은이의 초상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1949년부터 대만 사회를 옥죈 계엄령 체제는 1987년에야 해제됐다.

지난 세기 어지러운 현대사를 경험한 나라는 대만만이 아니다. 아시아 각국은 탈식민, 이념 대립, 전쟁, 민족주의 대두,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했다. 가장 민감한 '피부'를 가진 존재인 예술가들은 다양한 목소리로 권위와 관습과 억압에 저항했다. 새로운 미술운동이 집중적으로 출현한 것도 이 시기다.

 

                                                                             이승택,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 C-프린트에 채색, 81.5×116cm, 1988

31일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에서 개막하는 '세상에 눈뜨다'는 1960∼1990년대를 중심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을 들여다보는 대규모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공동 주최하며 앞서 4년간 관련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13개국 작가 100명의 작품 170여점이 나왔다.

전시 1부 '구조를 의심하다'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미술 개념 또한 새롭게 정의된 양상을 다룬다.

불붙은 화판을 한강에 떠내려가게 한 이승택의 1988년도 작품에는 미술 관습을 향한 거부의 몸짓이 담겼다. 싱가포르 작가 탕다우가 1979년 철거예정지에 흰 천을 파묻어 완성한 설치 작품 '도랑과 커튼'(1979)은 작가와 재료의 관계를 고찰한다.

 

                                                                             김구림, 1/24초의 의미, 비디오·컬러·흑백·무음, 10분, 1969

도시의 부상 또한 아시아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2부 '예술가와 도시'는 예술가가 도시(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예술 태도를 망라한다. 화이트 큐브를 떠나 도시 곳곳에 침투하며 대중과 만나려 했던 아방가르드 퍼포먼스도 다룬다.

오윤 '마케팅Ⅰ: 지옥도'(1980), 왕진 '얼음 96 중원'(1996) 등은 욕망으로 가득 찬 소비사회를 적나라하게 비춘다. 린이린 '린허 거리를 가로질러 안전하게 옮기기'(1995), 김구림 '1/24초의 의미'(1969), 데데 에리 수프리아 '미궁'(1987∼1988)은 일상으로 침투한 도시화와 그 그늘을 살핀다.

마지막 3부 '새로운 연대'는 예술가연합전선(태국), 카이사한(필리핀), 민중미술(한국) 등 예술행동주의 작업을 대거 소개한다. 제4집단(한국), 마츠자와 유타카(일본), 베이징 이스트 빌리지(중국) 등 행동주의와 실험, 놀이와 예술을 교차한 아시아 콜렉티브도 3부의 중요한 축이다.

 

                                                                             하르소노,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크래커·나무탁자·의자·책·펜·지시문, 가변 크기, 1977(2018)


이번 전시는 서구 중심 미술사 서술에서 벗어나 아시아 현대미술의 역동적인 지형도를 스스로 그려보려는 시도다.

관람객에게는 다양한 이유로 무심했던 아시아 현대미술을 감상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자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전시 제목 '세상에 눈뜨다'를 언급하면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의 정치적 자각, 이전과 다른 예술 태도, 새로운 주체 등장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개막일 오후 MMCA 과천 미술연구센터에서는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연 '아시아 현대미술의 접점'도 진행된다.

전시는 5월 16일 폐막하며, 6월 14일부터 9월 15일까지 싱가포르국립미술관에서 다시 이어진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세상에 눈뜨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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