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양재대로에 위치한 길동초등학교는 공립 초등학교로 1973년 1월에 인가를 받은 후 1974년 5월에 개교하여 1982년 3월에 야구부를 창단했다.
야구부를 창단한 지 언 36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길동초등학교는 전 프로야구선수 김기표, 박기남(이상LG트윈스), 유재웅(이상 두산베어스)등과 2018년 KBO 신인 지정회의에서 지명을 받은 문장은(기아타이거즈), 조대현(KT WIZ)을 배출해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매번 녹록치만은 않았다. 1991년 길동초등학교 야구부는 월등한 성적과 탄탄한 멤버로 이름을 날렸지만 점차 주춤하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가는 야구부 인원과 4강, 준우승 등에 머물며 당시 길동초등학교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95년 2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당시 코치였던 김재일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부임 후 4년 동안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끈기를 하늘도 알아준 것일까 길동초등학교 야구부에게도 봄날이 찾아왔다. 2000년도를 시작으로 제 1회기 LG 트윈스기 왕중왕전 우승, 2004년 제 5회기 LG 트윈스기 왕중왕전 우승을 거머쥐며 야구 부흥기를 보냈다.
잠시 찾아 온 봄날 이후, 또 다시 주춤하던 길동초등학교는 지난 7월22일부터 8월1일 국내 최대 규모의 유소년야구대회(U-12)에서 우승을 맛 봤다. 또한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대구광역시장배(제47회 회장기) 전국 초등학교 야구대회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다시 한 번 길동초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길동초등학교 야구부 김재일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 감독님의 연혁이 궁금하다.
”제 연혁이요? 너무 쑥스러운데…
저는 효재초등학교-보성중학교-보성고등학교를 거쳐 선수 생활을 하다가 송호대 2년제를 다녔어요. 그러다 91년에 여기(길동초)로 코치로 오게 됐죠. 물론 군 문제 때문에 7개월 정도 있다가 군대를 갔지만요. 제대 후에도 길동초로 돌아왔어요. 친정집 방문하듯 왔다가 93년도에 코치로 2년 정도 있었고, 95년 2월에 감독 부임한 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제 청춘이 이곳 길동에 있다고 보시면 돼요.”
▶ 코치에서 감독까지, 23년째 길동초등학교와 함께 하고 있다.
“제가 91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길동초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하고 있는데요, 25살 때 처음 지도자로 시작을 했어요. 당시 팀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95년 2월에 길동초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코치가 감독을 맡는다고 하니 보는 눈들이 썩 좋지만은 않았어요. 더군다나 선수도 많지 않고, 갑작스레 맡다보니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부임하고 한 4년 동안 성적이 없었어요. 8강도 힘들었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감독이긴 했어도 어딜 가나 제가 막내였어요. 제 밑으로는 안 오시고 다들 제 위로만 오시더라고요. 제 스승님과도 결승을 했었으니 말 다 했죠? 지도자하면서 막내 생활만 거의 10년은 한 것 같아요.”
▶ 지도자로 쉽지 않은 길을 걸은 듯하다.
“처음에는 시스템을 몰라 고생한 일이 많았어요. 불리한 판정을 받기도 하고요. 그렇게 3~4년 하니깐 시스템을 알겠더라고요. 그 후부터는 성적이 나기 시작했어요. 99년을 시작으로 4강에 들더니 2000년도에 처음으로 제 1회 LG 트윈스기 왕중왕전 우승을 했어요. 2004년에도 제 5회 LG 트윈스기 왕중왕전 우승했는데 그때가 부임 이래 제일 성적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2000년대가 부흥기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2004년도에는 선수가 많지 않았어요. 6학년이 4명뿐이라 김성훈 선수랑 동생이 5학년 사이에서 뛰고도 3관왕을 했으니까요. 다들 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또 다시 침체기를 걸었죠,”
▶ 함께의 가치를 실현 시켜준 든든한 동반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초등학교 야구부 지원은 상당히 미미한 편이에요. 그런데 반해 저희는 학교에서 매년 야구부가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책정해주시고, 쓰게끔 해주세요. 근방에 있는 초등학교 야구부 중에서는 저희가 제일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 않나 싶어요. 솔직히 사립도 아니고 공립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금전적인 것 외에도 성적에 대한 부담을 안주세요. 성적보다는 아이들이 부상 없이 경기를 뛰기를 바라세요. 교장선생님이라는 느낌보다는 누나 같은 느낌이랄까요? 교장선생님 만큼이나 체육부장 선생님이 도움을 많이 주세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도와주세요. 특히 저희가 주말에는 잘 못 쉬어요. 그래서 월요일에 쉬는 편인데 야구부에 대한 교육을 전적으로 맡아서 하세요. 매주 계획을 짜셔서 아이들에게 교육도 시켜주시고, 아이들이 쉴 때면 견학 같은 것도 해주시고 계세요. 재작년에 부장님이 하시다가 육아휴직을 내셔서 1년을 쉬셨어요. 그러다 올해 복직하셔서 또 도와주고 계세요. 사실 힘든 일이라는 거 너무 잘 알아요. 담임 선생님도 하시고, 체육부장 역할도 하시다 보니 이중 일을 하고 계신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이 죄송하고 감사하죠.”
▶ 감사할 사람이 많아서 인지 올해 7월 22일부터 31일까지 열린 U-12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재부모제) 우승을 거머쥐었다.
“저희가 서울시 대회에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어요. 팀 내 부상자도 많다보니 자연스레 U-12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도 큰 기대를 하고 가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아이들이 한 경기, 한 경기 하다 보니 안보이던 실력들이 나오더라고요. 그 날 투수들이 잘 던졌어요. 방어율이 거의 2점대도 안됐고, 매 게임 한·두 점 정도 나왔거든요. 결승경기에서도 1:0으로 한 점도 안줬죠. 투수들이 제 역할을 잘해준 덕이라고 생각해요. 경기 직후에 들은 이야긴데, 아이들이 장염에 걸렸었어요. 팀 내 3~4명 정도가 심했는데 그 중에 주전 선수들은 장염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참고 경기에 임하기도 했더라고요. 본인이 뛰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말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어요.”
▶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긴 했지만 리그에서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저희가 겨울 동계훈련을 갈 때만 해도 기대가 컸어요. 투수력도 좋고, 연습경기도 한 두 경기를 제외하고 다 이겼었거든요. 그러다가 2월에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구의야구장에서 열린 전국 초등학교 야구부 30갵ㅁ이 참가한 ‘2017 이스턴배 대한스포츠기 전국 초등학교 스피링 리그 야구대회’가 있었어요. 그때 아이들이 무리를 했던 것 같아요. 매일 하루에 2게임씩 하다 보니 피로가 쌓였던 거죠. 그래서 정작 소년체전 때는 에이스들이 부상을 당하면서 주춤하게 됐어요. 올해 멤버가 워낙 좋아서 저 나름대로 욕심을 부렸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죠. 멀리 보고 운영을 했어야 했는데 앞에 놓여 진 것만 보고 달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희가 서울시 게임은 15경기 중 6승 9팬데, 전국대회는 10경기 중 9승 1패 했어요. 너무 상대적이어서 그런 부분이 제가 감독 생활을 오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숙하다 싶은 게 있어서 많이 아쉽죠.”
▶ 오랜 지도자 생활로 감독님의 손을 거쳐 간 선수들이 많을 것 같다.
“최근 KT WIZ의 지명을 받은 조대현 선수도 있고, 기아타이거즈에 지명된 문장은 선수도 있어요. 문장은 선수는 1학년 때부터 저한테 야구를 배운 친구예요. 조대현 선수의 경우에는 우선 청소년 대표가 됐고 본인이 잘 해왔기 때문에 프로 지명을 두 선수 다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 친구들 외에도 전 프로야구선수 두산베어스의 유재웅, LG 트윈스 김기표, 박기남 선수도 제 제자들이에요.”
▶ 프로진출을 한 제자들을 보면 기분이 남다를 듯하다.
“사실 저는 야구선수로 성공한 삶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선수로 성공하고 싶은 그 마음을 너무 잘 아니까 그런 친구들을 한 번 가르쳐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에 지도자를 시작하게 됐죠. 오래 전이지만 저를 거쳐 프로 진출을 한 선수들이 종종 연락해와요. 그때마다 같이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때론 인생 선배로 조언도 해줘요. 그 친구들은 이제는 꿈에 한 발 더 다가 선 친구들이니까 지금처럼 성실하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 오리라 믿어요. 저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전보다 발전하는 모습으로 매년 아이들을 맞이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23년 동안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성실하게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 제자들도 성실하게 열심히 하다 보면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좋은 자리가 날 거라고 생각해요.”
▶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초등학교 감독, 그 무게감이 상당할 것 같다.
“다들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자리임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이제 야구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나씩 알려줘야 해요. 제가 처음 지도자를 시작할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조금 강압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제약이 많다 보니 과거보다 아이들 가르치기가 더 힘들어요. 규제도 많고 아이들도, 시스템도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매 해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돼요. 요 근래에는 ‘내 아들들이다.’라는 마음을 갖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되, 훈련을 할 때에는 아빠처럼 엄격하게 지도하고, 훈련이 끝난 후에는 엄마처럼 어루만져 주는 감독이 되고자 노력 중이에요. 23년 동안 초등학교 지도자를 해보니 다른 것보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 올 시즌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5학년 선수들이 총 10명이에요. 그런데 야구는 9명이서 하다 보니 선수들끼리 경쟁도 다른 팀보다 더 심하고, 저 또한 엔트리를 짤 때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왜냐면 저도 부모다 보니 내 아이가 경기에 뛰었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이 크다는 걸 알거든요. 엔트리에 못 들면 실망도 하실테고…그래서 지금은 비슷한 실력의 친구들을 번갈아 가며 경기를 경험하게끔 만들고 있어요. 지금도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모습이 보여요. 저희가 서울시 우승은 많이 했는데 전국대회는 이번이 첫 우승이에요. 저 이전에 다른 감독님이 계셨고, 저도 감독하면서 전국대회 우승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그래서 상당히 제 나름대로 포부도 있고, 긍지로 삼고 있어요. 5학년 친구들이 지금 6학년 친구들에 비해 투수력은 약하지만 타력이나 기본기를 충실히 다져 둔다면 올해보다 더 괜찮은 경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23년째 연임 중인 김재일 감독,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제가 아직까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저를 믿고 따라 와주는 선수들과 학부모님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른 팀은 빠른 시일 안에 멤버 구성도 끝나고, 저희와 달리 경쟁력이 생겨 성적이 잘나요. 반면에 저희는 구색을 맞추다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약해요. 그러다 보니 일 년이 금방 가버리더라고요. 우승권은 꿈도 못 꿨죠. 그러다 2년 전부터 6학년들이 9~10명씩 되니까 다른 팀과도 경쟁력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성적도 나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지도자를 시작할 당시에 마음에 새겼던 말이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이에요. 이 말은 제가 졸업생들을 위한 졸업선물에도 꼭 쓰는 말인데요, 중·고등학교를 가든, 사회에 나가든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거다라고 말해요. 이건 제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에요. 저도, 아이들도 어떤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위치에서 열심히만 한다면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 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